‘향후 3년 내 내 집 마련’이란 목표를 세운 4년차 직장인 김모 씨(30)는 퇴직연금 중도인출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시장 상황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달라질 것 같아 불안하다”며 “재직 기간이 길지 않아 큰 돈은 아니겠지만 퇴직연금에 사내대출까지 가능한 모든 자금을 어떻게든 끌어모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김 씨와 같은 고민을 토로하거나 실제로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이들처럼 집을 사기 위해 3만8000명이 퇴직연금을 깨고 1조8396억 원을 인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5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주택 구입과 주거 임차 등 주거와 관련된 이유로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경우가 전체의 80%를 웃돌았는데 특히 내 집 마련에 나선 3040세대의 비중이 높았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노후자금까지 끌어오는 셈이다. ● 연금 깬 3040, “주택 자금 영끌”
15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퇴직연금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만6531명이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4.3% 늘어난 규모다. 인출 금액도 2023년 2조4404억 원에서 지난해 2조7353억 원으로 12.1% 증가했다. 퇴직연금은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지만 주택 구입, 개인 회생 등 일부 사유에 한해 중도인출이 가능하다.
지난해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가입자 가운데 3만7618명(56.5%)이 주택 구입 목적이었다. 인출 금액도 1조8396억 원으로 전체의 67.3%에 달했다. 인원과 금액 모두 역대 최대치였다. 중도인출 사유별로는 주택 구입에 이어 주거 임차(25.5%), 회생절차(13.1%), 장기요양(4.4%) 등의 순이었다. 주택구입 목적의 중도인출 비중은 전년 대비 3.8%포인트 상승한 반면 나머지 사유는 줄었다.
퇴직연금 중도 인출자를 연령별로 보면 30대(2만8476명)와 40대(2만2536명)가 각각 42.8%, 33.9%로 전체의 76.7%를 차지했다. 이어 50대(14.9%), 29세 이하(6.1%), 60세 이상(2.3%) 순이었다. 29세 이하에서는 주거 임차가,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주택 구입 목적의 중도인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국가데이터처 관계자는 “주택 구입을 위해 퇴직연금을 빼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특히 퇴직연금을 주택 구입 자금으로 사용하는 30, 40대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2분기(4~6월) 이후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대출 수요가 늘었으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등 규제가 강화됐다. 이에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퇴직연금까지 활용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DB형 비중, 처음으로 50% 밑돌아
지난해 퇴직연금 전체 적립액은 전년 대비 12.9% 늘어난 431조 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절반(49.7%)은 퇴직급여가 사전에 결정되는 확정급여형(DB)에 해당됐다. DB형 비중은 전년 대비 4.0%포인트 줄면서 처음으로 50% 아래로 내려왔다.
같은 기간 근로자가 운용 주체가 되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적립 규모는 각각 0.9%포인트, 3.1%포인트 증가했다. 세액공제 확대 등의 영향으로 IRP 가입자는 1년 전과 비교해 11.7% 늘어난 359만1942명으로 집계됐다.
운용방식 역시 수익률이 더 높은 유형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퇴직연금 적립액의 74.6%는 예·적금, 국채 등에 투자해 안정성이 높은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용됐다.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비중은 1년 전보다 5.8%포인트 줄었다. 반면 집합투자증권, 직접투자 등 원리금이 보장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실적배당형은 전년 대비 4.7%포인트 증가한 17.5%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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