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징용 할아버지 마지막 소원 "아내와 함께 살게 해주오"

  • 입력 2001년 8월 28일 18시 26분


“58년 동안 나를 기다려온 아내와 함께 살게 해주오.”

1943년 사할린으로 징용갔다가 지난달 25일 귀국해 경북 고령군의 대창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창생(金昌生·79·사진) 할아버지. 결혼 한달 만에 아내 손분순(孫分純·76) 할머니와 생이별하고 꿈에도 잊지 못하던 아내를 찾아 58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지만 노부부는 지금도 ‘별거중’이다.

“아내를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지난 58년 동안 신혼 한달간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혼자 살고 있는 아내가 자꾸 눈에 밟혀 돌아왔어요. 제발 함께 살게 해주세요.”

하지만 김 할아버지는 울산에 살고 있는 아내를 데려올 형편이 못된다. 할머니 역시 전화 한 대 놓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몸담고 있는 양로원에서는 할머니가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 모실 수도 없다고 한다.

“6·25전쟁 전까지는 아내와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어요. 나는 돌아가기 어려우니 다른 사람과 재혼하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아내는 그럴 수 없다는 답장을 보내곤 했습니다. 아내는 꽃 같은 나이인 열일곱살에 세살 위인 나에게 시집왔어요.”

1960년 사할린에서 8500㎞ 떨어진 러시아의 그라스노다라빈스키로 옮겨간 김 할아버지는 1967년 한국계 러시아 여성과 재혼했다. 이역만리에서 혼자 살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98년 잠시 고향인 경북 성주를 찾았을 때 그는 아내인 손 할머니를 만나 두 손을 마주잡고 눈물을 흘리며 영구귀국을 결심했다. 그는 러시아로 돌아가 “한국에 가서 옛 아내와 살고 싶다”고 러시아 부인에게 애원했다. 그는 전 재산을 러시아 부인에게 남겨주고 몸만 귀국했다.

그는 “올해 안에 아내와 함께 살지 못하면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지척에 두고도 떨어져 살아야 하는 현실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는 것.

대창양로원 신월식(申月湜) 원장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로를 몹시 그리워하는데도 떨어져 살아야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며 “할머니가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주위에서 노력하고 있는 만큼 이것만 해결되면 두 분이 양로원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방을 만들어 드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령〓이권효기자>sapi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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