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내용의 국가첨단전략산업법 특례 규정을 보고했던 11일, 알고 지내던 재계 관계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우려다. ‘특혜(特惠)’의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특별한 은혜나 혜택’, 즉 어떤 종류의 혜택을 특정 개인 또는 집단만 가져가면 그게 특혜다.
이번 특례는 한국 기업들이 첨단 산업에서 자금 조달에 나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만들었다. 다만 현실에서는 SK그룹 한 곳에만 적용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책을 만든 당국자조차 “SK 외에 다른 수혜 기업이 있느냐”고 기자가 묻자 “규정을 적용해 봐야 알겠다”고 답했다.
이번 금산분리 특례를 받는 핵심 조건은 크게 세 가지다. 차례대로 ①일반 지주사를 대상으로 ②손자회사가 반도체 회사여야 하며 ③지방 투자를 늘려야 한다. 앞선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회사가 국내에선 SK그룹 정도다. 다른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는 지주사 체제가 아니다. 지주사 형태의 다른 기업들은 반도체 사업을 하는 마땅한 손자회사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특례가 적용되면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지분 50%만 가지고도 자회사(증손회사)를 만들 수 있다. 원래 규정은 반드시 지분 100%를 가져야 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으니, 여기서 이미 외부 자금 50%를 수혈받는 셈이다. 또 신설 증손회사는 그동안 금지되던 금융업에 나서는 것이 일부 허용된다.
이 구도는 SK그룹에 그대로 대입할 수 있다. 현재 ‘㈜SK(지주회사)―SK스퀘어(자회사)―SK하이닉스(손자회사)’ 구조로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SK그룹은 앞으로 지분 50%를 조달하면 SK하이닉스의 투자 유치를 위한 특수목적법인(SPC) 등 금융 증손회사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국민성장펀드 같은 외부 자금을 SK하이닉스 자회사에서 조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번 특례 제도의 방향 자체는 긍정적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수백조 원씩 투자를 쏟아붓는 글로벌 기업들과 ‘머니 게임’을 벌이고 있다. SK그룹 역시 최태원 회장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만 600조 원이 투입된다”고 말할 정도로 유례없는 자금 확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기업이 40년 동안 발목에 단 모래주머니처럼 차고 달리던 금산분리 규정을 일부 완화해 ‘자금 숨통’을 틔운 것만으로도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그런 혜택을 기업 한 곳만 받게 된 지금 방식은 자칫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국민 인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원칙을 지키며 진행해야 할 금산분리 완화가 이번처럼 몇몇 기업에만 주어진다면 ‘대기업 특혜’ 논란을 피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우리 산업계가 글로벌 선두를 쫓아가야 하는 산업은 반도체 외에도 여럿 존재한다. 인공지능(AI), 배터리, 미래차, 바이오 등 국가 전략산업 상당수가 반도체와 비슷한 처지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그때마다 이번처럼 해당되는 기업을 찾아 ‘원포인트’ 혜택을 줄 것인가. 반도체 산업에서 첫발을 디딘 금산분리 완화를 다른 산업, 다른 기업까지 원칙 있게 확산시키는 것이 특혜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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