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을 위한다는 착각[임용한의 전쟁사]〈395〉

  • 동아일보

임진왜란은 종전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사회와 한국인의 정서에 큰 영향을 남겼다. 영화나 드라마가 없던 시절이었지만, 임진왜란과 관련된 인물과 전투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인문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는 지역의 풍속과 인심에 대해서도 소개하는데, 그중 임진왜란과 관련된 이야기를 채록한 부분도 있다. 이중환은 그런 이야기에서 명나라의 도움을 과장하는 내용들을 보고 분노했다. 그는 명나라 장수의 공과 수고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임진왜란 극복의 주력은 우리 장수였다고 했다. 조선의 공로자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 사람은 단연 이순신 장군이다.

임진왜란 과정에서 명군이 세운 최고의 공적은 1593년 1월 이여송의 평양성 탈환이다. 평양성 탈환은 육지에서 공수의 주도권이 바뀌는 결정적 전기였다. 이 전투에 조선군도 참전했지만, 당시는 전쟁 초기의 패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때라 명군이 주도했다.

택리지는 평양성 탈환도 알고 보면 이순신 장군의 공이었다고 했다. 이 대목은 맞는 말이다. 이순신의 수군이 왜군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한 덕분에 왜군의 진격이 공세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택리지에 실린 설명은 오류투성이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으로 왜군을 격멸해서 왜군의 진격이 멈췄다고 했는데, 명량해전은 몇 년 후인 1597년의 일이다. 이런 오류가 여러 곳에서 보인다.

뜻이 좋으면 됐지, 내용 오류가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뜻이 좋다고 사실 왜곡을 용납할 수는 없다. 이는 이순신 장군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과정이 뒤틀리면 결론이 왜곡되고 후유증도 커진다. 과거 민주화 운동 시절 ‘운동권’ 인사들이 수없이 외쳤던 말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오히려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하기에 바쁘다.

#임진왜란#이순신#명나라#평양성 탈환#택리지#명량해전#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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