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파도’의 안보위기를 국방개혁의 호기로[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 동아일보

육군의 ‘아미 타이거’ 시범여단 전투단이 다족보행로봇(앞)과 다목적 무인차량을 활용한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전투실험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육군의 ‘아미 타이거’ 시범여단 전투단이 다족보행로봇(앞)과 다목적 무인차량을 활용한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전투실험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2025년 끝자락에 대한민국이 직면한 안보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복합적이고 불확실하다. 출산율 급감에 따른 병력 절벽의 가속화,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주변국의 군사력 경쟁 심화에 따른 역내 긴장 고조 등 ‘삼각파도’가 한꺼번에 닥쳐 오는 형국이다. 이 같은 도전을 극복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고, 미래 안보의 청사진을 그려갈 국방개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다가섰다.

군 고위 관계자는 “과거 국방개혁은 정권의 이념과 진영 논리에 휘둘려 ‘용두사미’가 되거나 적기를 놓쳐 버렸다”며 “이로 인해 국방과 안보 위기가 켜켜이 쌓여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작금의 안보 위기를 진정한 국방개혁의 호기로 만드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지난달 한미 양국이 공동 발표한 관세·안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서도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안보 난관은 여실히 드러난다. 팩트시트에서는 한국이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3.5%까지 증액해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필요한 북핵 억제력과 감시정찰 및 지휘통제 능력 등 핵심 역량의 확보, 동맹으로서의 역할 확대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제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발등의 불’인 병력 절벽 문제는 우리 안보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내년부터 20대 남성 인구의 급감이 본격화되면 병력 기반의 전쟁 수행 방식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국방부는 군 병력이 2040년에 35만 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군 간부를 지금처럼 20만 명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병사 수는 지금(30만 명)의 절반 수준인 15만 명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병력 자원의 ‘구조적 붕괴’에 대한 우려와 함께 복무기간 조정이나 일부 병력 감축으로 해결될 수준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공지능(AI)과 드론 등 첨단기술을 접목한 부대·전력 구조의 전면적인 재설계와 함께 우수 인력을 군에 유입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적 처방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 능력은 ‘협상 지렛대’ 차원을 넘어 실체적 위협으로 굳어지고 있다.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한국 전역을 겨냥한 전술핵 장착 극초음속 미사일 등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는 조만간 ‘마지노선’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북-중-러 3각 밀착을 뒷배로 삼은 북한의 대남 위협도 갈수록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맞서 우리 군이 킬체인(선제타격) 전력 확충 등 확고한 대북 억지력을 갖추려면 초당적 합의에 기반한 정책적 일관성과 충분하고 지속적인 국방예산 투입이 필수적이다.

주변국 또한 우리의 안보 환경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일본은 반격 능력 확보를 위한 방위력 증강을 가속화하고, 중국은 서태평양 전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해 군사력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새로운 군사경쟁의 시대가 동북아에 도래하면서 역내 긴장 수위도 고조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촉발된 중-일 양국 간 군사 갈등은 자칫 무력 충돌 사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운신의 폭을 확보하려면 동맹 강화, 외교안보 전략의 다층화와 아울러 자강력을 키우는 국방개혁이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국회,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범정부적 상설협의체를 구성해 미래 국방안보의 중장기 로드맵을 논의하고 추진 동력을 지속시키는 국방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 9월에 출범한 ‘내란극복·미래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가 그 마중물이 돼 의미 있는 개혁의 성과물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국가안보는 특정 정권 및 특정 진영의 업적이나 치적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공공재이며, 미래 세대에게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생존 기반이다. 이념으로 안보를 떠받칠 수 없고, 진영의 논리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냉혹한 국제정치와 안보 환경에 대한 냉철한 진단에 기반한 전략적 방책과 ‘내 편 네 편’을 초월한 국방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킬 든든한 울타리가 될 것이다.

이념 대결이나 정쟁 대상으로 전락해 가다 서다를 반복했던 과거 국방개혁의 실기를 반복할 시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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