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페미니즘 1화

  • 입력 2001년 1월 27일 15시 09분


인간과 동물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뛰어난 두뇌로 자연을 제패하고 문화를 창조한 인간이지만 본능 면에선 동물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사람들은 종종 인간 세계와 동물 세계의 질서를 비교한다. 페미니즘의 주 공격대상인 가부장제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는 제도일까.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46)는 동물과 인간의 세계를 비교하는 글과 강연, 방송출연으로 널리 알려진 학자다. 1월11일 오전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대 자연과학관을 찾았다. 인터뷰 주제는 ‘생물학과 문화인류학으로 본 페미니즘’.

―21세기를 여성의 시대라고들 하는데,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타당성이 있는 얘기인가요?

“진화생물학자로서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생물학이 기존 사회 질서를 옹호하는 학문이라고 보거든요. 사회생물학이 남성 우월주의를 뒷받침한다고.

포유류의 경우 수컷은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합니다. 여럿을 상대할수록 새끼가 많이 생기니까요. 그러므로 진화생물학 관점에서 보면 수컷은 바람을 피울 만한 이유가 있죠. 바람을 많이 피울수록 자신의 유전자가 더 많이 후세에 남겨지니까. 그런데 암컷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여러 수컷을 상대해도 별 도움이 안 되죠. 어차피 뱃속에 가졌다가 출산하는 새끼의 수는 한정돼 있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남자들은 유전적으로 워낙 바람을 피게끔 생겨먹은 동물이므로 바람 피우는 것을 탓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가능하죠.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엄청나게 반발하는 겁니다. 사회생물학은 못됐다, 진화생물학은 틀렸다고. 그런데 요즘 미국의 일부 여류 진화생물학자들은 페미니즘이 진화생물학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다윈의 이론에 비춰보면 사실 남성은 거의 필요 없죠. 다윈이 분석한 자연 질서에서는 모든 생명현상의 결과인 자식이 가장 중요해요. 그 다음 그 자식을 낳는 암컷이 중요하고. 수컷은 암컷이 자식을 낳을 수 있게끔 유전 물질의 반을 제공하는 구실을 할 뿐이에요. 그러니까 이 이론을 페미니즘 쪽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끌어안으면 훨씬 유리하지 않으냐는 것이지요. 동물 세계에서 암컷이 갖는 지위를 생각하면 페미니즘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론입니다.”

▼수컷의 바람기▼

―다윈은 자연선택설과 더불어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는 성선택설을 주장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을 산 건 자연선택설이겠죠?

“처음엔 성선택설까지 다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성선택설은 페미니즘 쪽에서 오히려 반겨야 할 이론이죠.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썼는데, ‘종의 기원’에서 처음으로 자연선택설을 주장했습니다. 자연선택설이란 더 적응을 잘한 형질이 후세에 남는다는 거죠. 그런데 자연선택설을 주장하다 보니 한 가지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 있었어요. 왜 수컷들은 전부 아름다운 색깔을 띠고 춤도 추는 등 위험한 짓을 하느냐는 의문이었죠. 숲에 가서 꿩을 봐도 장끼는 눈에 확 띄고 까투리는 눈에 안 띄잖아요. 까투리는 숨을 수 있는데 장끼는 숨을 수 없어 여우한테 잡아먹히기 쉽죠. 도대체 수놈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할까. 자연선택설로는 설명을 못 하는 거죠.

▼“결혼제도는 남성의 작품”▼

그로부터 12년 후 다윈은 또 한 권의 책을 쓰면서 성선택설로 수컷의 행동을 설명했습니다. 수컷들이 그런 짓을 하는 건 비록 생존에 위협을 받더라도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암컷이 가장 밝은 색을 띠는 수컷을 좋아하니까 암컷 눈에 띄어 교미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많이 남긴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밝게 만들어주는 유전자가 계속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수컷의 행태를 설명하는 과정에 다윈은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다윈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컷이 선택권을 가진 경우는 없었습니다. 후세 동물학자들이 그 반대 성향을 띤 동물을 몇 종 찾기는 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해 다윈의 이론을 깨지는 못했죠.

성선택설에 대한 연구는 다윈이 발표한 후 100년이 지나서야 시작됐어요. 남자 학자들이 잠자리에서 여자들이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거죠. 연구가 본격 시작된 1960년대는 여성운동이 싹트던 때였어요. 여권이 신장되면서 성선택설 연구도 활발해진 것으로 봅니다. 제가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데 요즘 이 분야에서 발표되는 연구논문의 70∼80%가 성선택설에 관한 연구예요.”

―동물의 세계야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사회에서는 대체로 남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습니까.

“꼭 그렇다고 볼 수 없지요. 다윈의 얘기에 따르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잠자리의 주도권이죠. 물론 남자가 여자를 겁탈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예외로 치고 대개 마지막 결정은 여자에게 달려 있죠. 부부간도 마찬가지죠. 남편이 추근거려도 아내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면 별 재주 없는 게 남자니까.

만일 결혼 제도가 없어 남자들이 매일 저녁 여자들을 찾아다녀야 한다면 당연히 결정권이 여자들에게 있죠. 미혼 남자들을 보면 알잖아요. 생물학적 관점에서 왜 그 결정권이 중요하냐 하면 바로 내 유전자가 후세에 남느냐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앞으로 연구를 더 해봐야겠지만, 저는, 결혼제도는 남자가 원해서 만든 제도라고 믿어요. 일단 확실하게 한 여자라도 내 품에 잡아두고 싶은 욕망 때문에 시작한 제도라는 거지요.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그런 사회가 지구상에 한두 군데는 있다고 그러는데, 여성이 자기가 필요할 때만 남자를 받아들여 아이를 낳는다고 한다면, 남자의 권한이 엄청나게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여자에게 잠자리를 같이 해달라고 빌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걸 다 넘겨줘야 한다고요. 그것이 싫으니 결혼이라는 제도로 여자를 붙들어 맬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는 거죠.”

최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동물들의 예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사촌이라 할 만한 침팬지나 고릴라 등은 번식기가 되면 암컷이 번식 준비가 돼 있다는 걸 알려준다. 외부생식기가 벌겋게 부풀고 냄새가 난다. ‘지금 나와 잠자리를 같이하면 내가 너의 새끼를 낳아줄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다. 그러면 수컷들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서로 경쟁하는데 결정권은 암컷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영장류 중 인간은 유일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은폐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죠. 자기 부인이 언제 배란하는지 아는 남편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러니 남자로선 계속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어떤 여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한 여자와 잠자리를 할수록 그 여자가 낳을 자식이 내 자식일 확률이 커지는 거죠. 만약 그 여자가 나말고 다른 남자들과도 관계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다른 남자들보다 그 여자와 더 자주 성교를 하는 거죠. 그게 뭐냐. 결국 한 여자를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겁니다.”

―말씀대로라면 여자들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어쩌다 가부장제가 자리잡게 됐을까요?

“인간에게는 문화라는 게 있잖아요. 침팬지를 비롯한 젖먹이 동물의 사회가 그렇듯이 우리도 여성이 중심인 사회가 됐어야 맞죠. 그런데 인류 역사의 어느 순간에 남성 중심의 문화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 시기에 대해선 앞으로 더 연구해야겠지만 많은 학자들은 농경사회의 시작을 꼽아요. 농경사회가 되자 부의 축적이 가능해졌는데, 그 부가 남성의 손에 넘어가면서 남성들이 주도권을 갖게 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죠.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남성이 경제력을 확보하면서 문화도 남성 중심으로 굳어진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죠.”

―누가 생산력을 확보하느냐에 달린 문제라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생산력이나 부를 더 가지게 될 경우 가부장제와 반대되는 가모장제 사회가 출현할 수도 있겠네요?

“수렵채집생활을 하는 종족들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지금도 그 사회에선 여성의 입김이 아주 강해요. 남성 여성의 차이가, 특히 경제력 면에서 차이가 별로 없다는 얘기죠. 매일 먹는 것, 이를테면 곡류나 과일 같은 것은 대개 여성이 충당해요. 남성의 몫은 수렵이죠. 그런데 수렵은 매일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허구한 날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고, 어쩌다 짐승을 잡아온 날은 으쓱거리지만 나머지 날들은 부인이 장만한 걸 쭈그리고 앉아서 먹어야 하는 처지거든요. 그런 사회에서는 남성이 큰소리를 칠 수 없죠.”

▼수렵사회에선 여성이 우월▼

얼마 전 국내에 번역된 미국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의 신작 ‘제1의 성’에 따르면 미래 사회는 경제력 면에서 여성에게 유리한 사회다. 그 동안엔 근육의 힘이 필요한 산업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머리를 쓰고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 산업이 주종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헬렌 피셔는 또 미래산업의 중심이 네트워킹, 곧 사람 간 관계를 중요시하는 산업이 된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그 점에서 여성들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헬렌 피셔에 따르면 경제권이 여성에게 넘어가고 여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까지 될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제1의 성’은 ‘뉴욕타임스’로부터 두들겨 맞았어요. 근거 없는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아니냐고 해서. 제 생각에도 헬렌 피셔의 얘기가 다 맞을 것 같진 않아요. 다만 여성의 경제력이 남성에 버금갈 정도로 커지리라는 데는 동의합니다. 제 생각엔 여성의 경제력이 굳이 남성을 능가하지 않더라도 여성이 스스로 충분히 먹고 살 때가 되면 지금의 남녀관계가 크게 바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신호들이 보입니다. 경제력이 풍부한 여자들은 결혼은 하지 않고 정자만 달라, 그런 얘기들을 합니다. 더욱이, 예전엔 정자를 누군가에게 받아야 했지만, 요즘은 정자와 난자를 인터넷에서 사고 파는 시대입니다. 제가 여자라고 칩시다. 좋은 직장 있고, 직장 탁아소에서 아이들을 맡아주고, 그러면 미쳤다고 남편을 모시고 사느냐는 거죠. 인터넷에서 정자 사 가지고 아이 낳아서 혼자 키우고, 내 배짱대로 살고, 내가 즐기고 싶으면 오늘 저녁에 어느 남자에게 전화해 ‘우리 집에 올래’ 해서 불러들여 즐기고…, 그런 시대가 오면 남자들이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나를 선택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그런데 예전과 달리 남자가 여자에게 별로 줄 게 없으니 굉장히 어렵죠.

그런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정상적인 성비를 가진 우리나라는 아주 위험해요. 어머니들이 병원에서 여자 아이들을 너무 지운 탓에 지금 여자가 귀하잖아요. 2020년엔 남녀 비율이 1.25 대 1이 된다는 통계가 있어요. 이건 굉장한 비율입니다. 남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여자를 못 찾는다는 얘기죠. 남자들이 여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죠. 엄청난 변화가 올 겁니다. 내기하라면 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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