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개별상봉 이모저모]"반갑긴한데 말을 해야지…"

  • 입력 2000년 8월 16일 14시 52분


0…이환일(李桓溢.82)씨는 15일에 이어 16일 고려호텔 숙소에서 헤어졌던 아내 최옥견(80)씨, 아들 응섭(54), 딸 경숙(61)씨를 만나 네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지난 51년 1.4후퇴 때 혈혈단신 월남한 이씨. 그는 남쪽에서 재혼한 아내 한정오(73)씨가 북에 가면 가족들에게 끼워주라며 자신의 목걸이를 녹여 마련해준 금반지 세개를 아내와, 아들, 딸에게 차례로 끼워주면서 혈육상봉의 정을 나눴다.

그러나 노환으로 귀가 먹고 말도 못하는 아내 최씨 앞에선 이씨도 할 말을 잃은듯 했다. "반갑긴 한데 뭐 말을 해야지, 말 못하는 게 너무너무 안타까워"라며 이씨는 아내 손을 잡았다.

아들 응섭씨는 "젊어서 만나 의사를 소통해야지, 둘 다 늙어 80 고령에 만나 말문이 안 트이니 이게 누구 때문입니까"라며 "이제 조국통일 되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젊어 만났으면 할 얘기가 많았을텐데…" 지난 51년 봄 인민군 입대통지서를 받으면서 헤어진 아내 박태용(71)씨를 다시만난 최태현(崔泰賢.69)씨,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말도 많지만 아내가 말을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내가 다 버리고 남쪽으로 갔는데 혼자 살며 애들 잘 키웠소. 그새 못한 것 조금이라도 보답될까 해서 준비했어"라며 최씨는 서돈짜리 가락지 두개를 아내 손가락에 끼워줬지만 박씨는 아무 말도 없었다.

최씨는 헤어질 때 겨우 네살이던 아들 희영(53)씨와 남동생 태화(67)씨에게도 반지와 시계를 채워주면서 "나를 용서하라"는 말을 계속했다.

최씨가 50년 간 간직했던 꽃다운 스무살 아내의 얼굴은 이제 박씨에게서 찾아볼수 없지만 최씨에게는 그 때 아내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는 밭 일도 같이 하고 일하다 새참 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말도 잘 못한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니 어쩌다 손이 이리 쭈글쭈글 됐나." 50년만에 평양에서 만난 아내 유봉녀(75)씨에게 금가락지를 끼워주며 최성록(崔成祿.79)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최씨는 "내가 죄인이다. 같이 살지 못하고 이래 50년이나 걸렸으니…"라며 흐느꼈다. 1.4후퇴 때 피신하며 생이별한 아내와 두 딸을 15일 처음 만났지만 그 당시 핏덩이였던 아들은 이미 사망한 후였다.

최씨는 다시 만난 아내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이건 며느리 주려고 준비한 건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씨와 유씨는 헤어진 후 각각 남과 북에서 재혼했지만 둘 다 지금은 배우자와 사별한 상태이다.

유씨는 재가한 후에도 북에 남아 있던 최씨의 부모님을 계속 모시며 두 딸 춘화(55), 영자(53)씨를 키웠다.

16일 고려호텔 최씨의 방에 모인 네 가족은 꿈에도 그리던 시간을 가지며 서로 "오래살아 다시 만나자"고 거듭 약속했다.

○…"차라리 결혼해 살고 있었으면 했는데…". 분단 50년만에 남편과 상봉한 한재일(韓載一.82)씨의 아내 김순실(金順實.75)씨는 말 대신 눈물로 서러움을 달랬다.

1938년에 한씨와 결혼, 지난 50년 7월 남편이 인민군에 징집돼 생이별한 이후 김씨는 아들 영선(英善.53)씨를 키우며 홀로 살았다.

15일에 이어 16일 고려호텔에서 가족만의 시간을 가진 김씨는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아무 말 없이 회한의 눈길만 보냈다. 아들 영선씨는 침묵하는 어머니 대신 가족들의 소식을 전하며 "빨리 통일돼서 어버지 팔갑을 맏아들이 하게 해줘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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