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틀 다진 ‘박정희의 경제 총참모장’… 김정렴 박정희기념사업회장 별세

한상준 기자 입력 2020-04-27 03:00수정 2020-04-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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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 시절 역대 최장수인 9년 3개월간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은 새마을운동,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한국 경제 고도성장의 굵직한 기반을 다졌다. 김 회장(왼쪽)이 1969년 10월 21일 재무부 장관(1966년), 상공부 장관(1967년)을 거쳐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서실장 임명장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DB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의 절반에 달하는 9년 3개월(1969년 10월∼1978년 12월) 동안 역대 최장수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며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 기틀을 마련한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강경상고, 일본 오이타(大分)고등상업학교(현 오이타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고인은 광복 전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을 당했고 일본 히로시마(廣島)에서 일본 패망을 맞았다. 육군 준위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고인은 1956년 한국은행을 거쳐 1959년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이재국장으로 공직에 발을 디뎠다.

이후 고인은 한일회담 대표위원(1964년), 재무부 장관(1966년), 상공부 장관(1967년)을 거친 뒤 비서실장(1969년)을 맡는 등 박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요직을 두루 거쳤다. 고인은 회고록에서 “각하, 저는 경제나 좀 알지 정치는 모릅니다. 비서실장만은 적임이 아닙니다”라고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고, 경제가 잘돼야 정치·국방도 튼튼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기록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생전 고인에 대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경호실장을 맡았던) 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재규가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고인은 박정희 정부의 수출입국, 공업화 정책 수립에 깊숙이 관여했고 한국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된 중화학공업 대책과 방위산업 육성 정책의 계획과 실행을 주도했다. 새마을운동, 경부고속도로 건설, 부가가치세 도입,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건설 등도 고인의 손을 거쳤다.

‘박정희 경제사령관의 총참모장’이란 평가를 받았던 고인은 정작 박 전 대통령과는 학연, 지연 등 아무 연고가 없었다. 박 전 대통령 시절 경제수석비서관과 농수산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정소영 씨는 “고인은 진짜 무(無)에서 시작해 성실성과 능력으로 박 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고 말했다. 고인은 회고록에서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행동해야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일해야 한다”며 “비서실 사람들은 명함을 만드는 일도, 청와대 마크가 새겨진 봉투를 바깥에 갖고 나가는 것도 삼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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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장을 마친 뒤 1979년 2월 주일본 대사로 임명된 고인은 1980년 9월 귀국 후에는 공직을 맡지 않았다. 그 대신 박 전 대통령 시절과 관련한 회고록 집필에 몰두해 ‘한국경제정책 30년사’ ‘아, 박정희’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등을 썼다. 집필 과정에서 시력을 심각하게 잃었음에도 고인은 생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취미를 “회고록 쓰는 것”이라고 했다.

고인의 아버지는 약 7년 동안 조흥은행을 이끌었던 김교철 전 조흥은행장이고, 큰형은 김정호 전 한일은행장이다. 김정호 전 행장의 딸은 미래통합당 김종인 전 선거대책위원장의 부인인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로, 김 전 위원장은 고인의 조카사위다. 26일 빈소를 찾은 김 전 위원장은 고인에 대해 “‘나라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이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곳에 갈 수 없다’며 본인을 모셔가려는 기업들의 제안을 뿌리칠 정도로 공직자로서 모범적인 삶을 사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유족으로는 희경 씨, 두경 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 승경 전 새마을금고연합회 신용공제 대표이사, 준경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사위 김종웅 전 현대증권 회장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8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23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김정렴#박정희기념사업회장#한국경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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