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리 기업을 해외 투기자본 먹잇감 만들 상법 개정은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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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올해 상반기 내 상법 개정을 목표로 재계와 합의안 도출에 나섰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상법 개정안의 4개 핵심 쟁점 중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 의무화부터 재계와 절충을 거쳐 우선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재계와 야당의 반발 속에 1년 반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소수 지분으로 수십 개 계열사를 좌우하는 일부 총수의 전횡을 막고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개정안은 소액주주 권리 강화를 명분으로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간섭에 길을 터주는 내용이 많아 기업의 불안감이 높다.

정부가 우선 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다중대표소송제만 하더라도 모(母)기업 주주가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국내 기업이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소송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소지가 있다. 정부는 이 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지만 독일 프랑스 등 다수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이를 도입한 미국 일본에서도 자회사 지분 100%를 가진 모기업 주주에 한해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미 SK, 한화 등 주요 그룹이 자발적으로 도입한 전자투표제 또한 대부분의 국가가 기업 자율에 맡겨 놓고 있다.

이 밖에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해 특정 인사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나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 역시 투기자본 등 외부 세력의 영향력을 과도하게 키워줄 수 있는 조항이다. 이대로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 기업이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재계의 주장이 기우(杞憂)가 아니다.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도 함께 법제화가 필요하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국내외 경제 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권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상법 규제를 늘려서는 안 된다. 경영권이 흔들리고 언제 소송 당할지 모르는 환경에서 어떤 기업도 혁신 투자에 나설 수 없다. 상법 개정은 시한을 정해두고 밀어붙일 게 아니라 경영권 견제와 방어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상법#다중대표소송제#집중투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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