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제목이 흥행성공 주요 변수인데… ‘라이드 라이크 어 걸’→‘라라걸’ 작명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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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의미 관계없이 단순 축약… 배급사 “관객 눈길 끌기 고육책”
‘월요일이 사라졌다’는 성공 사례… 호기심 불러 90만 관객 모아

호주 경마 대회인 멜버른컵 155년 역사상 여성 기수로는 최초로 우승컵을 거머쥔 미셸 페인의 삶을 그린 영화 ‘라이드 라이크 어 걸’. 한국에서는 ‘라라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 판씨네마 제공
호주 경마 대회인 멜버른컵 155년 역사상 여성 기수로는 최초로 우승컵을 거머쥔 미셸 페인의 삶을 그린 영화 ‘라이드 라이크 어 걸’. 한국에서는 ‘라라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 판씨네마 제공
15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호주 영화 ‘라라걸’을 두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제목 때문이다. ‘라라걸’의 원제는 ‘라이드 라이크 어 걸(Ride Like a Girl)’로, 수입배급사인 판씨네마가 원제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 영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나치게 무성의하다’, ‘판씨네마에서 수입 배급한 영화 ‘라라랜드’(2016년)와 너무 비슷하다’ 등 비판이 나온다.

영화는 2015년 호주 최대 경마 경기인 멜버른컵 155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 기수인 미셸 페인이 우승한 실화를 다뤘다. 페인은 멜버른컵 우승 후 “여자는 힘이 부족하다고 했다. 방금 우리가 세상을 이겼다”고 말했다. ‘Like A Girl’, 즉 ‘여자애 같은 것’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반기를 든 페인의 삶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화의 주제가 담긴 원제였던 만큼 바꾼 제목이 이를 반영하지 못하자 관객들이 아쉬워하는 것이다.

한 수입배급사 관계자는 “원제를 축약해 제목을 짓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요즘 관객들은 한국에서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외신을 통해 영화 정보를 빨리 접하기 때문에 원제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국어로 번역할 경우 원제의 의미를 살리려 애쓴다.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네버 레얼리 섬타임스 올웨이스(Never Rarely Sometimes Always)’의 한국어 제목은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로 정해졌다.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 퍼스트런 제공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 퍼스트런 제공
판씨네마는 ‘라라걸’에 대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관객이 급감했다. 마케팅 비용도 많이 부족해 관객의 뇌리에 박히는 제목을 짓느라 애쓴 결과”라고 설명했다.

제목은 영화의 성패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수입 영화의 제목을 어떻게 짓느냐는 중요한 마케팅 전략 중 하나다. 좋은 제목은 무엇보다 ‘주제가 잘 드러난 제목’이다. ‘월요일이 사라졌다’(2018년)가 대표적이다. 1가구 1자녀로 인구를 통제하는 사회에서 태어난 일곱 쌍둥이를 지키려는 외할아버지는 이들에게 각각 먼데이부터 선데이까지 요일을 이름으로 지었다. 이 중 먼데이가 사라진다. 제목이 무슨 뜻인지 화제가 됐고 관객 90만 명을 모았다. 큰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가 아니고 스타 배우도 나오지 않은 걸 고려하면 기대치를 웃돈 수치다. 이 영화를 수입 배급한 퍼스트런의 장정욱 대표는 “영화 내용이 잘 반영됐고, 실제 요일이 사라졌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어 주제와 흥미를 모두 잡았다”고 말했다.

이달 2일 개봉한 영국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은 원제보다 더 명확하게 영화의 주제를 담은 사례다. 스리버튼 정장의 첫 단추는 때때로, 중간 단추는 항상 채우고, 마지막 단추는 절대 채우지 않는다는 규칙을 뜻하는 ‘Sometimes Always Never’가 원제다. 수입배급사인 찬란 관계자는 “원제 그대로 나가면 의미를 알기 힘든 데다 길어서 제목을 다시 지었다”고 밝혔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라이드 라이크 어 걸#라라걸#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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