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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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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나온 김소연 시인의 에세이 ‘마음사전’은 그 형식이 독특하다. 마음에 관한 낱말 300여 개를 모아서 사전 형식으로 풀어 설명했다. 그러나 이 책은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저자의 감성과 사유를 담은 글 모음이다. 가령 ‘외롭다’는 말에 대해 ‘텅 비어 버린 마음의 상태를 못 견딜 때에 사람들은 외롭다라는 낱말을 찾는다’고 설명한다. “여느 에세이와 달리 개성적 형식”이라는 독자들의 호평과 함께 4쇄를 찍으면서 1만 부가 나갔다.
최근 들어 이처럼 독특한 형식의 에세이가 등장하고 있다. 작가가 주제를 잡고 형식을 정해서 쓰는 ‘기획 에세이’다.
독창적인 테마로 편집
일상적인 에세이에서 벗어나 기획 에세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마음사전’에 이어 권혁웅 시인의 ‘두근두근’이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두근두근은 몸의 각 부분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형식이다. ‘손’ 항목에 ‘그의 왼쪽 손목에는 하얀 밴드가 둘러쳐 있다. 그가 걸을 때마다 앞뒤로 그의 손을 잡고 걸었던 바로 그 자리다’라고 적는 식이다.
지난해 출간된 조연호 시인의 ‘행복한 난청’은 음악 앨범을 리뷰하는 짜임새를 택했지만 앨범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음악과 소리에 관한 에세이다.
지난해 나온 소설가 김영하 씨의 ‘여행자-하이델베르크’는 ‘소설+에세이+사진’의 형식. 독일 하이델베르크를 여행하면서 쓴 이 에세이는 작가가 쓴 신작 단편을 넣긴 했지만 소설은 여행 산문 전체를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다.
사진 그림 곁들여 감성 강조
에세이 시장의 확대도 변화의 또 다른 요인. 2000년대 이후 신생 출판사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인 에세이를 앞 다퉈 내면서 쏟아지는 에세이들 사이에서 주목받으려면 차별화한 기획력이 필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작가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에세이를 ‘낱글 모음’이 아니라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것. ‘두근두근’의 저자인 권혁웅 씨는 “작가들 사이에서 장르 의식 자체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다”면서 “시, 소설로는 담아낼 수 없는, 모호한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에세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평론가 김화영 씨와 시인 장석남 씨도 이 같은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는 등 기획 에세이 열기는 계속될 참이다. 두근두근과 행복한 난청을 편집한 김민정 랜덤하우스출판사 편집장은 “요즘은 에세이를 낼 때 작가들에게 기존에 발표한 글을 모아서 달라고 부탁하기보다 작가들이 미리 테마를 정해서 글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작가들이 편집자들과 적극적으로 기획을 논의하는 등 ‘작품 에세이’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