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4년 후버대통령 사망

  • 입력 2003년 10월 19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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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경제 대공황 이후 반세기에 걸쳐 미국 정치의 지배이념으로 자리매김해 온 뉴딜(New Deal)의 진보주의.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뉴딜의 정치적 기폭제가 된 것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였다.

후버는 자유방임주의로 일관하며 시장 스스로 공황을 극복하기를 바랐으나 실패했고, 국민들은 ‘강한 정부’를 내세운 민주당에서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진보주의의 헤게모니는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승리하면서 막을 내리게 되는데 ‘레이건 혁명’을 이끈 신자유주의의 정책 산실이 바로 ‘후버연구소’였다.

1919년 후버가 설립한 이 연구소는 정통보수파의 방어 거점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백악관-행정부-싱크탱크를 잇는 권력의 델타(삼각)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연고로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후버는 리처드 닉슨과 더불어 가장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이면서 동시에 가장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이다.

후버는 1929년 10월 뉴욕증시가 곤두박질할 때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미국 경제는 건실하다”는 펀더멘털론에 집착했다. 인플레를 우려해 금리를 낮추지 않았고 환율도 손대지 않았다.

존 갤브레이스 교수는 “불황기에 통화정책이란 의지하기엔 너무 연약한 갈대지만 후버는 이마저도 외면했다”며 “사고에 대한 도그마의 완전한 승리”라고 비판했다.

1932년 그가 재선에 나섰을 때 주식시장의 가치는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해 있었다.

그런데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버의 망령’이 떠돌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경제 실정이 후버를 무덤 속에서 불러오고 있는 것.

언론은 앞 다투어 “부시가 후버 이후 재임시에 일자리가 줄어드는 첫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고 떠들고 있고, 공화당은 어떻게든 후버의 망령을 떨쳐버려야 한다며 부심하고 있다.

부시는 지금 ‘테러와의 전쟁’ 때보다 더 버거운 상대와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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