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사談진談’]달나라엔 토끼가 살지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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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주 타이터스빌의 한 다리 위에서 스페이스X 팰컨9 로켓이 발사되는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이 돌아가고 있다. 타이터스빌=AP 뉴시스
미국 플로리다주 타이터스빌의 한 다리 위에서 스페이스X 팰컨9 로켓이 발사되는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이 돌아가고 있다. 타이터스빌=AP 뉴시스
장승윤 사진부 차장
장승윤 사진부 차장
최근 미국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에 올린 “I‘m an alien(나는 외계인이다)”이라는 글을 봤을 때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기자들 앞에서 “I’m Iron man(내가 아이언맨이다)”이라고 돌발 선언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머스크 팔로어들은 “그럴 줄 알았다” “이제야 고백하는구나”라며 열광하는 댓글을 달았다.

머스크가 화성인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기사도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민간 항공우주회사 스페이스X를 들어 화성인 머스크가 그가 타고 온 우주선을 은폐하고 지구인처럼 보이기 위해 로켓 발사를 여러 차례 고의로 불발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머스크만 알겠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그의 우주선은 작년 5월 31일 우주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발사 성공 다음 날 국내 언론도 스페이스X 관련 뉴스를 비중 있게 다뤘다. 당시 미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고, 흑인 폭동으로 백악관 앞까지 시위대가 몰려드는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플로리다로 날아가 민간 우주선 발사 장면을 지켜봤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로켓 발사 장면을 구경하겠다고 전국에서 몰려든 엄청난 인파였다.

국내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실종된 미국의 모습’이라며 혀를 차는 의견이 많았지만, 몇 초 후 시야에서 사라지는 로켓을 보기 위해 수천 km 거리를 달려 온 사람들에게 코로나19 따위는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사진에는 우주에 대한 미국인들의 뿌리 깊은 호기심과 우주 개발 최강국으로서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미국인들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공상과학(SF)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달나라 여행에 대한 거대한 포부를 풀어낸 ‘달세계 여행’(1902년)은 세계 최초의 SF 영화다. 흑백 무성영화지만 달나라에 대한 간절한 꿈은 관객들에게 또렷이 전달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영화를 보고 자란 어린이들은 우주 여행의 꿈을 품고 과학자가 되었고, 투자자와 정치인으로 성장해 아폴로11호를 달로 보냈다. 1966년 TV 시리즈 중 큰 인기를 끈 ‘스타트렉’이 방영된 시기에 미국은 최초의 우주 왕복선 발사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왕복선 이름을 ‘컨스티튜션’(헌법)으로 이미 정해 놓은 상태였다. 스타트렉 열성 팬들은 당시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게 40만 장의 편지를 썼고 마침내 우주선 이름은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엔터프라이즈’로 바뀌었다.

허블 망원경 이야기는 여느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미국은 8개 기관 합동으로 20년간 약 20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직경 2.4m짜리 렌즈를 장착한 초대형 우주 망원경을 제작했다. 하지만 기계적 결함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허블 망원경은 44개월 동안 고철덩어리로 방치됐다. 그래도 과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 ‘그래비티’처럼 망원경을 고치기 위해 우주로 수차례 과학자들을 보냈고, 마침내 수리된 허블은 초고해상도의 사진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이 ‘고철덩어리’ 허블을 통해 130억 년 전 생성된 우주가 현재도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도 국내에서는 코로나19 극복이 최우선 과제다. 다음 달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부동산 관련 공약들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당선 이후에도 지지율에 도움이 되는 정책에만 신경 쓰다 보니 우주 개발의 꿈은 늘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우주 개발은 단지 외계인을 찾고 화성에서 ‘인증 샷’을 찍으려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머스크는 스페이스X 사업을 추진하면서 1000여 기의 위성을 쏘아 올렸다. ‘스타링크’라는 우주 인터넷망을 구축한 뒤 테슬라 전기차를 연결해 완전 자율주행 시대를 여는 것이 머스크의 궁극적인 꿈이다. 만약 우주 인터넷을 특정 기업이 독점하게 됐을 때 지금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처럼 무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가까운 미래 국내 기업에서 만든 자율주행차를 이용하면서도 우주 인터넷 사용료는 미국에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주적인 원대한 안목이 필요한 때다.

장승윤 사진부 차장 tomato99@donga.com


#미국#테슬라#머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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