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사談진談’]마음을 꿰뚫어보는 사진

홍진환 사진부 기자 입력 2021-04-14 03:00수정 2021-04-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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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상태에 따라 눈 쌓인 숲속에서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는 얘기로 주목받은 사진. 당신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시나요? 사진 출처 페이스북
홍진환 사진부 기자
최근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흥미로운 게시물 하나를 발견했다. 흑백사진에서 무엇이 보이느냐는 것이다. 나는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한 남자가 숲속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안경을 벗고 아무리 관찰해도 분명히 사람이라는 것이다. 개냐 사람이냐, 상반된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해외에서도 이 사진을 두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급기야 영국 일간지 ‘더 선’은 논란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전문가 인터뷰까지 덧붙였다. 검은색 푸들이 하얗게 눈 덮인 숲속에서 나오는 모습이 마치 배낭을 메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꼬리가 사람 머리, 강아지 얼굴이 배낭, 앞다리가 사람의 다리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더 선과 인터뷰한 환경심리학자 리 체임버스는 “착시 효과가 불안한 심리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불안한 상태일수록 배낭을 멘 남자를, 낙관적이고 긍정적일수록 개를 먼저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는 심리가 불안하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실제와 다른 해석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위에서 아래, 즉 위협적인 시점에서 눈의 초점을 맞추면 사람이 보인다는 얘기다. 반면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의 경우, 개를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고 시야를 넓혀 눈 덮인 경치까지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눈높이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안정된 심리 상태라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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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사진을 촬영할 때 피사체를 향해 있는 카메라의 높이가 정서적,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 카메라의 위치에 따라 다른 느낌의 결과물이 나온다. 높은 곳(High level)에서 찍을 경우 피사체가 위축되거나 감시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면 인간의 눈높이(Eye level)에서 셔터를 누르면 대체로 피사체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평이하고 지루한 측면이 있지만 인간의 시지각은 이 시점에서 사물을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영상이 눈높이에서 촬영되기 때문이다.

촬영 높이가 수용자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사진 한 장으로 현재의 심리 상태를 단언하기에는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 지각심리 전문가들도 “웃고 넘길 사진이지,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사진 한 장으로 자신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착시 사진 외에 MBTI 성격유형 검사도 심리 테스트 유행에 한몫하고 있다.

이런 심리 테스트가 유행처럼 번지는 이유는 뭘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심리 테스트를 관계 맺는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많다. 테스트 결과를 SNS에 인증하고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 안도감과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 이 과정에서 소속감이 높아지고 관계가 확장된다. 결국 고립감과 외로움 등을 이기는 수단으로 심리 테스트가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심리 테스트 열풍 이면에는 무엇보다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가 깔려 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팀은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심리 테스트 유행을 ‘레이블링(labeling) 게임’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특정 유형으로 딱지(레이블)를 붙인 뒤, 해당 유형이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종하면서 불확실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놀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체성에 대한 불안함이 해소된다는 설명이다.

혈전 부작용으로 중단됐던 백신 접종이 재개되긴 했지만 ‘코로나 블루’의 긴 터널을 언제 통과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전염병 감염 위험도 문제지만 폭등하는 부동산, 추락하는 경제, 최악의 실업률,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 어느 하나도 국민들의 마음에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심리 테스트일지라도 한번 웃어보는 여유를 누리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사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배낭 멘 사람이 아니라, 푸들을 보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진환 사진부 기자 jean@donga.com



#마음#사진#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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