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20달러?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봉쇄의 경제학[딥다이브]

  • 동아일보

쏟아지는 뉴스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하메네이 제거로 시작된 전쟁. 이란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초강경 반격에 나서면서 점점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데요. 이거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걸까요.

워낙 상황이 급변해서 예측이 쉽진 않은데요. 하지만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지금 알아두어야 할 팩트 위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란 테헤란 시내의 모습. AP 뉴시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란 테헤란 시내의 모습. AP 뉴시스

*이 기사는 3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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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이면 된다더니, 5주 이상?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를 포함한 이란 핵심 수뇌부를 한꺼번에 제거하는 데 성공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에픽 퓨리(Epic Fury)’ 군사작전. 전례 없이 신속하고 성공적인 지도부 제거였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초기엔 이 사태를 “이틀이나 사흘 안에 끝낼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는데요.

어라, 이후 점점 말이 바뀝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요일(3월 1일)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선 작전 기간을 “4주”로 수정했고요. 이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선 이 작전이 “4~5주를 예상한다”고 언급했죠. 그리고 월요일(2일)엔 군대가 4~5주보다 “훨씬 오래 버틸 능력이 있다”고 말했어요.

미국 백악관이 1일(현지시간) 공개한 지난달 28일 대(對)이란 군사작전 ‘에픽 퓨리’(Epic Fury) 상황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택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트럼프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댄 케인 합참의장,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모여 있다.
미국 백악관이 1일(현지시간) 공개한 지난달 28일 대(對)이란 군사작전 ‘에픽 퓨리’(Epic Fury) 상황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택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트럼프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댄 케인 합참의장,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모여 있다.

공습 목적에 대한 설명도 달라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 직후에 이란 국민을 향해 “정부를 장악하십시오”라고 촉구했어요. 민중 봉기를 통한 정권 교체를 기대한 건데요. 하지만 즉각적인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요. 그러자 이후 애틀랜틱 인터뷰에서 그는 “생존한 이란 지도부와 대화하고 싶다”고 말을 바꿨죠. 지도자만 제거하고 정권 체제는 유지하는 ‘베네수엘라 모델’로 방향을 튼 겁니다. JD 밴스 부통령도 이번 작전의 목표를 이란 정권의 “사고방식(mindset)”을 바꿔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죠.

이렇게 메시지가 혼선을 빚는 건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전략에 오판이 있었다는 의미이겠죠. 예상보다 이란의 반격은 강력하고, 미국 내 지지율은 약한 상황인데요.

로이터통신이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27%만이 이번 이란 공습을 지지했어요(반대 43%, 잘 모름 29%). 군사행동 개시 직후의 지지율로는 전례없이 낮은 수준입니다(9.11 테러 후 아프가니스탄 보복 공격에 대한 지지율은 90% 이상).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이 빗나가고 있습니다.

이란의 물귀신 작전과 그 파장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시설과 카타르 LNG 생산 시설, 쿠웨이트 공항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항구와 두바이 호텔, 협상을 중재해 온 오만과 카타르까지. 이란은 지금 주변 걸프국가에 무차별 미사일·드론 공격을 퍼붓고 있습니다.

폭력과 혼란을 주변국으로까지 퍼뜨리는, 일종의 물귀신 작전인데요. 어차피 미국과 군사적으로 맞서서 이길 순 없으니, 미국과 가까운 주변 나라를 인질로 삼은 겁니다. 특히 경제적 거점을 타깃으로 하고 있죠.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모든 게 하메네이가 미리 짜뒀던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이란 정권 관계자 말을 전합니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사태를 확대하고 큰불을 지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국제법을 위반해 우리의 레드라인이 넘어가자, 우리는 더 이상 게임의 규칙을 따를 수 없게 됐죠.”

3월 1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한 산업단지가 이란의 공격을 받아 건물이 무너져있다. AP 뉴시스
3월 1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한 산업단지가 이란의 공격을 받아 건물이 무너져있다. AP 뉴시스

실제 그 파장은 즉각 전 세계에 미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석유 시설인 라스 타누라 정유공장, 카타르 라스라판 LNG 시설이 이란 드론 공격 때문에 가동을 중단했는데요. 이 소식에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단숨에 약 50%, 아시아도 40%가량 급등했죠.

물론 걸프국가들은 패트리엇과 사드(THAAD), 천궁2 같은 방공망을 이용해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대부분을 격추시켜 막아냈습니다. 다만 이란의 3000만원짜리 ‘샤헤드-136’ 자폭 드론을 격추하느라 한 발에 15억원(천궁2 기준)짜리 요격 미사일을 쓴다는 게 문제이죠. 워싱턴 스팀슨센터의 켈리 그리코 연구원은 “이란이 드론에 1달러를 쓸 때마다 아랍에미리트는 드론 격추에 약 20~28달러를 지출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막대한 방어 비용을 계속 감수할 수만은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된 한국산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2(M-SAM Ⅱ)’가 이번에 처음 실전에서 사용됐다. 방위사업청 제공
아랍에미리트에 수출된 한국산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2(M-SAM Ⅱ)’가 이번에 처음 실전에서 사용됐다. 방위사업청 제공

특히 중동 국가는 전력망과 해수 담수화시설이 파괴된다면 재앙적 상황에 처할 수 있거든요. “에어컨과 해수 담수화 시설이 없다면 걸프국가는 사실상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악몽 같은 시나리오이죠.” (뉴욕대학교 아부다비 캠퍼스의 중동정치학 교수 모니카 마크스의 알자지라 인터뷰)

그래서 이란의 도발이 계속되면 인내심이 바닥날 거고요. 전직 아랍에미리트 관료인 타렉 알로타이바는 아부다비가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테헤란 공군은 아부다비 공군에 비해 몇 세대나 뒤처져 있습니다. UAE는 전투력뿐만 아니라 실전에서 검증된 공중 급유 능력을 갖췄죠. 아부다비는 반격은 물론 장기간 전투를 지속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태가 ‘중동 전면전’으로 번진다면 그건 진짜 재앙이 될 겁니다.

유가는 얼마나 더 오를까
3월 2일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발표했습니다. 알자지라가 입수한 에브라힘 자바리 혁명수비대 사령관 고문의 발언은 다음과 같았죠.

“원유 가격이 81달러에 달했고 세계는 최소 200달러까지 오를 것을 기다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폐쇄됐다. 이슬람 혁명수비대 해군과 육군 영웅들은 이 해협을 통과하려는 모든 선박에 불을 지를 것이다. 미국은 이 지역의 석유에 목말라 있지만, 그들은 단 한 방울도 얻지 못할 것이다.”

아울러 국제 조난 주파수를 통해 모든 선박에 “통항 불허”를 통보했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할 거라고 협박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나선 건 처음이죠.


물론 법적으로 따졌을 때, 호르무즈 해협은 아직 폐쇄된 건 아닙니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이란의 순찰 활동도, 기뢰 부설도 없다”며 여전히 폐쇄되지 않았다고 반박하죠. 하지만 이란은 실제로 민간 상선 최소 4척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할 선주도, 보험사도 없을 수밖에요. 사실상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인 겁니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에너지 동맥’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한다는 건? 한마디로 이란이 ‘다 같이 죽자’고 달려들었단 뜻입니다. 걸프산 원유의 하루 수출량 약 2200만 배럴 중 다른 우회로를 택할 수 있는 건 최대 700만 배럴 정도(모건스탠리 추정). 크플러(Kpler)에 따르면 이 지역 원유 수출량은 이미 하루 280만 배럴로 8분의 1토막 났습니다.

3일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82달러를 기록했는데요. 이러다 마느냐, 더 오르느냐는 어디까지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언제 풀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OPEC이 아무리 생산량을 늘린다 한들 유조선이 운항을 못 하면 아무 소용 없으니까요.

봉쇄가 신속히 풀리지 않으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속속 나옵니다. JP모건은 장기 분쟁이란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번스타인은 120~15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경고했죠. 우드매켄지 앨런 겔더 부사장 역시 “최근의 비교 사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유가가 배럴당 125달러를 넘어섰던 때”라며 세자릿수 유가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이 2일 성명을 내고 “호르무즈 무력 충돌 확산으로 우리 선원의 안전 확보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사진은 선원이 직접 촬영한 호르무즈 인접 아랍에미리트 제벨알리항.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제공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이 2일 성명을 내고 “호르무즈 무력 충돌 확산으로 우리 선원의 안전 확보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사진은 선원이 직접 촬영한 호르무즈 인접 아랍에미리트 제벨알리항.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제공

유례없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원유 수입의 70%를 중동지역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엔 이만저만 큰일이 아닙니다. 약 7개월 치 원유를 비축하고 있긴 하지만, 국제 유가 상승이 물가를 자극하는 건 피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씨티그룹은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82달러를 유지하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60%포인트 오르고 한국 GDP 성장률은 0.45%포인트 떨어질 거란 예측을 내놨습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주요국 중에서도 유독 큰 타격을 받게 될 텐데요.

만약 여기 그치지 않고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선다면, 그때부턴 유가만이 문제가 아니게 될 겁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장기적인 폐쇄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필연적으로 초래할 겁니다.”(밥 맥널리 래피던에너지그룹 설립자) 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즉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거죠.

시장 불안감이 고조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3일(현지시간) “필요할 경우, 미국 해군은 가능한 한 신속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대한 호위 작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죠. 또 미국 국제금융개발공사(DFC)에 이 해역 통과 선박의 보험료를 보증하도록 지시했다는데요. 부디 이런 조치가 큰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 추이를 지켜보시죠.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3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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