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권 大亂’ 빚으면서 ‘혁신 정부’라니

  • 입력 2006년 7월 29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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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하나 발급받으려고 새벽부터 구청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수도 서울에서 매일 빚어지고 있다. 신청에 필요한 번호표도 못 받고 돌아가는 시민이 하루 수백 명이다. 번호표를 받은 사람도 실제 접수까지 몇 시간씩 더 기다리느라 하루를 공친다. 입만 열만 ‘혁신과 시스템’을 자랑하는 정부가 초보적 대민(對民) 서비스인 여권 발급에서 ‘대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달 초 ‘공공기관 CEO 혁신토론회’라는 걸 열어 공공기관 본연의 설립 목적에 맞게 공공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지난해 4월 ‘전자정부 수준’을 진단한 결과 대(對)국민서비스 분야가 특히 우수하다고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이렇게 훌륭한 정부의 여권 발급 현장에서 “지금이 6·25전쟁 때냐” “경기도에서 꼭두새벽부터 왔는데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음을 알고나 있는가.

여권 발급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 까닭은 작년 9월부터 여권사진을 부착식에서 전사식(電寫式·스캔 후 입력하는 방식)으로 바꾼 데다 해외여행 연수 등으로 여권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마땅히 여권발급기와 창구를 늘려 국민 불편을 줄여야 했다. 여권발급기와 인력을 지원하는 외교통상부는 ‘미국과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될 경우 대당 1억 원인 여권발급기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이유로 뒷짐만 지고 있다니, 언제부터 그렇게 예산 걱정을 했는지 궁금하다. 무분별한 지역개발, 줄줄 새는 복지 등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천억 원, 수조 원의 예산을 들먹이는 정부 아닌가.

보다 못한 서울시가 여권 발급 업무를 3시간 늘리겠다고 나섰지만 이 정도로 대란이 해결될 리 없다. 정부의 직무유기 때문에 몇만 원에서 몇십만 원까지 내면 여권을 빨리 받아 준다는 여행사와 대행사가 국민을 등치는 형편이다. ‘혁신정부’ 운운하는 소리가 국민 속을 더 뒤집어 놓는다. 선진국은 그런 말 않고도 우체국과 공공도서관 등 전국 곳곳에 여권 발급소를 설치해 국민의 수고를 덜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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