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영]‘反헌법’에 멍든 제헌절

  • 입력 2006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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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에 마음이 무겁다. 우리 헌정사상 지금처럼 헌법의 근본이념과 기본원리가 심각하게 훼손된 일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및 시장경제질서의 헌법 이념이 노무현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부정되거나 도전받고 있다.

심지어 공산주의 혁명을 모색하는 북한의 장관이 우리 땅에 와서 ‘선군정치’의 덕을 보고 있는 대한민국은 당연히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고 우리 헌법의 실체를 짓밟는 망언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도 노무현 정부는 제대로 대응조차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 공산정권의 후견 아래 고아가 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58회 제헌절의 우리 헌법 자화상이다.

우리 헌법은 사회의 다양성을 포용하지만 평등의 깃발 아래 자유를 희생시키거나 참여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대의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것까지 허용하지는 않는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과 국정에 대한 투입(Input)은 최대한으로 보장하지만, 헌법의 근본이념과 기본원리를 존중하는 범위내에서만 허용된다.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선출된 권력도 헌법적 정당성에 어긋나는 권력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 선출된 권력임을 내세워 노무현 정부가 자행하거나 묵인하고 있는 많은 일은 분명히 우리 헌법의 수용 한계를 한참 벗어난 반헌법적인 행태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도입한 참모정치 내지는 위원회정치는 대의(代議)적인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는 우리 헌법의 조직원리에 어긋난다.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중요 정책이 국민에게 책임 지지 않는 측근 몇 사람의 참모와 위원회에 의해서 입안되고 시행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좌파적인 일부 과격세력이 틈만 나면 벌이고 있는 불법 폭력시위는 집회의 자유의 헌법적 한계를 벗어나 처벌의 대상인데도 정부는 묵인하며 그들의 기만 살려주고 있다. 오히려 국가안보의 사명을 띤 국군과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력을 무장해제시켜 법치주의의 근간을 허문다. 시민과 무관한 일부 좌파적 시민단체는 국가조직 요소요소에 포진해 국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국회의 상전 노릇을 해도 정부는 국고를 지원하면서 그들의 장단에 춤추기 바쁘다. 건전한 사유재산까지 징벌적 과세대상으로 삼고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시장경제질서를 교란하면서 사회주의적 경제토대를 강화하고 있다.

헌법 수호의 의무와 책임을 진 대통령의 이러한 반헌법적인 정치행태는 우리 헌정질서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 그런데도 조직적인 대항세력이 없어 제대로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무력한 제1 야당은 집안 단속도 제대로 못하는 형편이다. 뒤늦게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비판적인 장외세력은 아직은 활력이 부족하다.

언론매체의 비판기능에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방송위원회를 비롯한 방송매체는 완전히 어용화되어 비판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나마 남아 있는 비판적인 일부 메이저 신문마저 정부의 집요한 공격으로 고전하고 있다. 비판적인 언론에는 재갈을 물리고 우호적인 언론에는 당근을 주는 비민주적인 언론정책이 일부 위헌 결정된 언론악법으로 표면화되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는 헌정사상 가장 큰 시련에 직면해 있다. 실효성 있는 비판세력이 없는 노무현 정부는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과 전선을 마주하고 대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의 코드인사가 보여 주듯 침묵해 온 다수 국민이 5·31지방선거를 통해 꺼내 든 강력한 경고메시지조차 무시한 채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선출된 권력이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반헌법적인 정치행태를 계속할 때 주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레드카드일 수밖에 없다. 레드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는 대한민국 주권자의 모습에 58회 제헌절의 비애가 스며 있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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