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재성]AI 패권 경쟁 시대, 북한 앞에 놓인 선택지

  • 동아일보

기술 생태계 편입 여부가 국가 생존 좌우해
北, AI를 체제-국방력 강화 자산 규정했지만
고립 따른 핵심 장비, 인재 한계로 제약 커
中 의존 대신 남북 전략협력 택할까 주목돼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미국 주도의 새로운 경제안보협력체 ‘팍스 실리카(Pax Silica)’가 12일(현지 시간) 출범했다. 미국은 한국 일본 영국 호주 이스라엘 네덜란드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우방국을 규합했다. 이 기술 동맹 생태계는 미래를 좌우할 신기술, 특히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공급망 재편 경쟁의 또 하나의 장이다. 중국 역시 11월 19개 개발도상국과 함께 희토류 협력체 ‘녹색 광업 이니셔티브’를 구성했다. 이런 경쟁 속에서 한국은 ‘소버린 AI’라는 목표와 국제 협력을 조화해 AI 시대에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AI 대전환이 본격화된 시대, 북한은 생존 가능한 체제로 남을 수 있을까. AI의 확산이 안보,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변화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기술 경쟁력의 불균등성은 국력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미중 양국이 기술 패권 경쟁을 주도하면서 대부분의 국가는 반도체와 고급 인력, 연구 생태계의 제한으로 독자 발전에 한계를 갖고 있다. 이에 국제 기술 생태계에의 편입 여부가 국가의 생존 가능성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가 됐다. AI 시대는 남북 관계에 어떠한 가능성과 도전을 제공하게 될 것인가.

북한은 AI 기술에 일찍부터 전략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김일성종합대, 김책공업대, 국가과학원, 425군부대 산하 자동화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AI 기술을 국가 전략기술로 인식하고 2000년대 초부터 체계적인 연구 기반을 구축해 왔다. 초기에는 음성 인식, 기계 번역, 전문가 시스템, 패턴 인식과 같은 영역을 활성화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인 연구와 개발이 이뤄져 딥러닝, 자연어 처리, 컴퓨터 비전 등 현대적 AI 분야로의 확장이 가속화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등 전통적 우방국과의 공동 연구 및 학술 교류도 지속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AI 윤리, 디지털 주권, 데이터 보안 등 제도적 측면에도 관심을 보이며 정보산업법 등 관련 법제 마련에 착수하는 정황도 포착된다.

김정은은 올해 과학기술이 “부강조국 건설의 침체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과학자들에게 세계를 놀라게 할 수준의 ‘혁신적 안목’과 ‘창조적 연구 정신’을 주문했다. AI를 단지 기술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 경쟁에서의 우위를 점하고 경제 발전과 군사력 강화를 동시에 이룰 국가적 전략으로 여기는 것이다. 2025년 ‘국방발전전-2025’ 전시회 개막식 연설에서는 AI를 “첨단 국방산업의 핵심”이라며 전자전, 정보전, 우주전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 자산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무장 장비들의 구조와 성능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으며, AI 기술은 전략·전술적으로 돌파구를 안겨주고 있다”는 평가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을 계기로 AI 기술과 결합된 드론 개발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북한은 핵심 하드웨어의 확보 불가, 글로벌 지식 생태계로부터의 고립, 인재 양성 체계의 부재 등 구조적 한계로 인해 중장기 발전 가능성이 극히 제한적이다. AI를 둘러싼 북한의 전략은 현실적 제약과 이념적 고립의 틀 속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남북 간 기술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다음 네 가지이다. 첫 번째는 소버린 AI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와 인력, 지식 생태계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두 번째는 중국과의 기술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부담이 적고 통제 기술과 군사적 응용 분야에서 실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 선택지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대중 종속을 심화시켜 기술, 경제, 안보 전 부문에서 독자성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는 중국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 한국 등 주변국과 제한적 협력을 시도하는 병행 전략이다. 그러나 미중 기술 생태계가 분리되는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네 번째는 북한이 한국과 전략적 협력을 선택해 기술 발전을 도모하면서 국제 AI 협력 구조에 편입되는 경로다. 기술 격차를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나, 체제 불안과 통일 우려라는 정치적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남북 관계 개선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기술을 필요로 하고, 한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미래 질서를 위해 기술 기반의 소통 채널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내와 상상력, 그리고 과거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전략적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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