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현/에너지 전쟁…한국은?

  • 입력 2003년 10월 13일 18시 14분


코멘트
“에너지 확보는 국가의 생존이 달린 문제입니다.”

한국 에너지경제연구원(KEEI)과 외교통상부가 지난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 국제에너지세미나에 참석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에너지 확보를 둘러싸고 각국이 벌이는 경쟁을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동아시아 지역만 해도 러시아의 시베리아 송유관 노선을 자국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직접 나섰다. 하기야 초강대국 미국이 국제사회의 눈총을 무릅쓰고 이라크전쟁을 벌인 이유 중의 하나가 원유 확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현재 국제 에너지 시장은 20년 넘게 가격과 수급 상황이 안정됐던 ‘좋은 시절’은 끝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에너지 확보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이번 세미나에는 각국 정부 인사와 연구원뿐 아니라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로열더치셸 등 다국적 에너지회사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러시아 에너지 개발과 공급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공식 일정 뒤 사석에서 만난 국내 전문가들은 답답함을 털어 놓았다. 한국만 급박한 정세를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한 민간 전문가는 “과연 우리는 에너지 확보를 위한 장기적 국가전략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에너지를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정치적 사안과 연계시키는 위험한 발상이 버젓이 공론화되는 현실을 보면 에너지 안보 의식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미국의 한 컨설팅회사는 사할린에서 러시아 본토와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가스를 공급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북한에도 가스를 공급할 수 있어 북핵 문제 해결 카드로도 쓸 수 있다는 안이었다. 그러나 이 가스관은 러시아 극동지방과 북한을 지나게 돼 경제성이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생명선이나 다름없는 에너지 공급망의 통제권을 북한의 손에 맡기자는 것과 다름없는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에너지 도입은 장기적이고 대규모로 이뤄지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을 놓치면 손해를 보게 마련인데 현재 한국은 가스공사 민영화에 대한 최종 결정이 늦어져 장기공급 계약조차 미뤄야 하는 상황이다.

“에너지 정책을 잘못 수립하면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인데….”

한 민간 전문가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는 절박한 심정을 정부 당국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기현 모스크바특파원 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