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지리멸렬 국민의힘, 입법독재 일등공신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0일 23시 21분


국민의 힘으로 친위 쿠데타 막은 나라에서
의장이 61년 만에 야당 ‘입틀막’이라니
계엄 사과-윤석열과 절연 없는 대표 장동혁
한때 지지했던 보수층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

우원식 국회의장이 9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의제와는 상관없이 진행되자 본회의를 정회시켰다.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장실에 항의 방문을 하였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우원식 국회의장이 9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의제와는 상관없이 진행되자 본회의를 정회시켰다.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장실에 항의 방문을 하였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야당 의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13분 만에 국회의장에 의해 발언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1년 전 무도(無道)한 대통령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국민의 힘으로 막아낸 나라에서, 그것도 목숨 걸고 국회 담장을 넘어 들어가 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시킨 우원식 국회의장에 의해 헌정 사상 61년 만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역사에 남을 사건이다.

만일 그 야당이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당한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이 아니라면, 심지어 그 야당의 대표가 진작 윤석열과 절연이라도 했다면 과연 일어날 수 있었을까.

9일 국회 필리버스터에 나선 나경원 국힘 의원을 지지하진 않는다. 그는 상정된 가맹사업법에 찬성한다면서도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무도하게 의회를 깔고 앉아 8대 악법을 통과시키려 하기 때문에 악법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시작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개혁’으로 규정할지 모른다. 국힘이 ‘악법’이라는 내란전담재판부, 법왜곡죄, 대법관 증원, 4심제 도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대상 확대 법안 등 ‘사법 파괴 5대 악법’과 정당 현수막 설치 제한법, 유튜브 징벌적 손해배상제, 필리버스터 요건 강화법 등 ‘입틀막 3법’은 위헌 소지가 적지 않다.

나경원이 “민주당은 의회 독재를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우 의장은 의제에서 벗어난 발언이라는 국회법을 읽으며 마이크를 차단했다. 민주당 입법 독재로 가맹사업법도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패스트트랙에 올랐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의제에서 벗어난 발언이라는 건가.

1964년 4월 20일 오후 2시 37분 대한민국 최초로 필리버스터에 들어간 당시 민주당 의원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의사일정 변경 동의 취지를 설명한다면서 “자유당은 그래도 정권 잡은 지 4, 5년 뒤에나 해 먹었는데 (5·16혁명) 이놈들은 정권 잡자마자 반년도 못 되어서 중석불(텅스텐을 수출하고 얻은 달러)을 먹지 않았소” “박정희 대통령은 세칭 3억 불 중 선도금으로 1억 기천만 불을 일본으로부터 받아왔다는 풍설의 진가를 밝히라” 등등 오후 7시 56분 이효상 국회의장이 산회를 선포할 때까지 5시간 19분간 종횡무진 발언했다. 결국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를 무산시키는 목적을 이룸으로써 “야당으로서의 최후의 발악, 생존의 길”이라는 필리버스터의 진가를 유감없이 활용한 DJ였다.

어떤 국회의장도 ‘야당 입틀막’에 쓰지 않은 국회법 규정을 자칭 의회주의자이자 민주당 출신 의장 우원식이 휘둘렀다는 것은, 비극이다. 계엄 해제 결의 때 108명 중 고작 18명만 참석한 국힘이 한심해 보였거나, 우 의장 자신이 더 큰 자리를 보고 그런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웰빙당 국힘은 TK자민련으로 전락해도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개딸 아닌 국민은, 특히 보수층은 그렇지 않다. 민주당은 지지층 아닌 국민을 나치 부역자처럼 여기며 악법을 쏟아내지만 국힘은 막을 힘이 없고, ‘야당 최후의 발악’ 필리버스터마저 생존이 끝났다. 그래도 6·25전쟁 때는 이승만 대통령도 미국도 있었는데 지금은 우크라이나 같은 기분이다.

이 정부가 강행하려는 사법부 장악이 독재의 신작로임을 헝가리 폴란드 베네수엘라 등이 보여준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회견에서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해 “그게 무슨 위헌이냐” “가장 최종적으로 강력히 존중돼야 할 것이 국민 주권의 의지”라고 일갈했다. 겁나기 짝이 없게도 민주주의 퇴행국 지도자들 역시 “민주국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의회에 있으며 직선 대통령에게도 있다”며 사법부 독립성을 파괴했다. 콩가루 야당들이 법안 보이콧을 남발하거나 단일 후보를 내놓지 못해 정권 교체에 실패해 온 슬픈 공식까지 따라갈까 두렵다.

국힘 대표 장동혁은 10일 비장한 척 국회 본청 앞에 천막을 치고 8대 악법을 막는 무기한 농성을, 그것도 참 쉽게 릴레이로 들어갔다. “우리가 황교안”이라더니 황교안처럼 삭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똥 묻은 개’ 같은 태도 그대로 어떻게 악법을 막겠다는 건지 웃음만 나온다.

내부 총질 말자고? 한동훈부터 쫓아내자고? 계엄 사과 없이, 윤석열과 절연 없이, 4번 타자 장동혁은 없다. 오류는 고쳐도 한계는 못 고친다. 차라리 국힘이 장동혁을 버리는 게 국힘이 사는 길일 수 있다. 지리멸렬한 국힘이 악법에 날개를 달아주고, 이재명과 민주당 독재에 주단을 깔아주고 있다.

#야당#필리버스터#국회의장#윤석열#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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