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신인석/기관투자가부터 개혁하자

  • 입력 2001년 4월 16일 18시 36분


우리 주식시장에는 하나의 수수께끼가 있다. 금융위기 이전의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고 기업의 자산규모도 함께 커왔는데도 불구하고 주가는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거나 뒷걸음질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것을 수수께끼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경영감시 중임 맡을 적격자▼

기업의 자산은 부채, 주식발행금, 축적된 이익금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리 기업의 경우 이 중 이익금의 역할은 미미했고 성장은 대부분 부채나 주식발행에 의존해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부채를 늘려 외형성장을 꾀하는 이른바 차입경영만이 수익성 없는 기업의 성장비결이었다면 차라리 이해는 쉽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를 신봉한 금융기관이 주가로 대변되는 수익성과는 관계 없이 자금을 공급해 주었다는 귀에 익은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주식발행도 적지 않아서 금융위기 이전에 국내 기업이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의 15% 이상을 주식발행을 통해 조달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영국 등의 경우 이익금의 역할이 절대적이고 부채가 그 다음이다. 주식발행은 주가를 올리기 위해 기존주식을 소각함에 따라 오히려 마이너스인 경우가 보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기업의 주식발행은 대단히 활발했던 셈이다. 주식투자는 기업이 망하지 않는다고 해도 항상 손실위험에 노출돼 있다. 따라서 투자 결정은 당연히 수익성에 민감해야 정상인데, 우리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식시장에 왜곡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주식시장에 왜곡이 있었다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면, 주식시장의 왜곡현상이 기업의 낮은 수익성을 초래했다는 새로운 해석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은 자금 공급과 기업에 대한 경영감시라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주식시장의 비교우위는 경영감시 기능에 있다. 따라서 주식시장이 어떤 이유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기업경영의 문제점이 방치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기서 조금 비약하면 기업의 낮은 수익성과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는 주식시장의 감시기능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까지도 얻게 된다.

선진국의 경험으로 볼 때 주식시장의 경영감시 기능은 두 가지 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다. 첫째는 적대적 기업인수의 활성화이다. 80년대 미국 경제의 주된 경영감시 기능이 바로 적대적 기업인수에 의해 이뤄졌음은 많은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다.

둘째는 기관투자가의 역할이다. 일반적으로 소액주주가 적극적으로 경영을 감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감시하는 데 드는 노력에 비해 얻는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9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는 경영을 적극 감시할 유인이 있을 만큼 대주주이면서 동시에 경영진과는 독립된 존재라는 점에서 기관투자가를 주목했다.

최근 3년간 한국은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라는 목표 아래 주식시장의 경영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에 따라 적대적 기업인수가 가능해졌으며 이를 목적으로 한 펀드 조성도 허용됐다. 그러나 활성화된 기업인수 시장은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돌이켜볼 때 과연 기업인수를 통한 감시기능 제고가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따라서 아직은 맹아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연기금과 투신 등 기관투자가의 역할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종투자자 이익에도 맞아야▼

이런 배경을 총체적으로 감안할 때 최근 떠오른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허용 문제는 단기적인 주가대책으로 간주해 간단히 부정해 버릴 사안이 아니다. 최근 기관투자가의 경제적 의의는 자본시장의 수요기반 형성을 넘어서 감시기능의 제고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기관투자가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보완할 점을 계속 발굴해가는 전향적 자세가 바람직하다. 물론 99년 투신위기 때 선명하게 부각됐듯이 기관투자가 역시 최종 투자자의 이익에 충실히 부합하도록 경영되고 있는지 여부도 문제의식을 갖고 감시받아야 한다. 투신, 은행신탁, 연기금 등 모든 기관투자가의 구조 개혁이 화두가 돼야 할 시점이다.

신인석(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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