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들은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뜯어보면 생김새도 모두 달랐다. 회색에 알룩달룩한 여러 가지 색이 섞인 놈들이 흔히 보는 비둘기의 색인데 모양은 그대로 알룩달룩하면서도 바탕의 털빛이 제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회색 바탕, 갈색 바탕, 보라색 바탕, 검은색 바탕, 등등이고 아예 단색인 경우에도 회색, 검은색, 검정과 흰색의 얼룩 무늬, 갈색과 흰색의 얼룩 무늬, 그리고 순백색이 있었다. 비둘기들은 나와 사귀기 전에는 사동 앞 마당에 내려앉아 아래층의 미결수들이 던져 주는 과자 부스러기나 식빵 조각을 쪼아 먹었다. 그러다가 내 땅콩 맛을 보면서부터는 아예 내 모습이 잘 보이는 맞은편의 영치품 창고 지붕 위로 몰려들었다. 그놈들은 창고의 양철 지붕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창가로 나서기만 하면 일제히 창문 턱으로 날아 올라 앉았다. 나는 창문 턱에 모이를 쏟아 놓았고 비둘기들은 경계하지 않고 내 손바닥 위에까지 올라 앉았다.
내가 좋아했던 비둘기가 몇 마리 있었다. 나는 그놈들의 이름을 지었다. 제일 처음의 것이 ‘대장’이었는데 순백색의 수놈이었다. 수컷과 암컷의 구별은 몸집의 생김새와 크기와 행동거지로 금방 알게 된다. 수컷은 어깨가 벌어지고 아래쪽이 날씬한데 목을 움츠렸다 빼었다 하면서 뽐을 낼 때에는 마치 역도 선수가 덩치 자랑을 하는 듯하다. 수컷은 경쟁자인 다른 수컷과는 서로 쪼아대고 밀어내고 날개로 후려치면서 항상 좋은 자리 싸움을 한다. 그리고 암컷 앞에서는 빙빙 돌면서 윗몸을 부풀리고 꾹꾸거린다. 두번째의 비둘기는 역시 순백색으로 내가 ‘순이’라고 부르던 암놈이었다. 순이는 대장보다는 몸집이 작고 날씬했다. 순이는 처음에는 여러마리 가운데서 눈에 띄지 않았다. 순이는 창턱에 왔다가도 곧 밀려나고는 했다. 순이가 창을 향해서 앉아있는 모양을 언젠가 자세히 살펴 보다가 절름발이라는 걸 확인했다.
<글: 황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