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배종수]구구단 5단부터 외우게 한 선생님

  • 입력 2005년 12월 10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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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일은 이, 이이는 사, 이삼은 육…. 그 당시엔 왜 외워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학교가 시작돼서 파할 때까지 시간만 나면 이 구구단을 입에 달고 다녔던 것 같다. 2를 5번 더하여 답을 내려면 2+2+2+2+2와 같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짜증스럽고 비능률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곱셈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같은 수를 여러 번 더해야 하는 경우에 곱셈을 사용하면 편리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셈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는 한없이 많다.

곱셈 중에는 2×3=6, 3×5=15와 같이 계산하기 쉬운 것도 있지만 968×796처럼 계산하기 어려운 곱셈도 있다. 그러나 어떤 곱셈이든지 이일은 이, 이이는 사…구팔 칠십이, 구구 팔십일 안에서 해결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이 구구단을 외우고 있으며 앞으로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이 구구단 외우는 것은 변함없이 전승(傳承)될 것이다. 곱셈 구구(九九)란 바로 우리가 외워야 할 각 단이 9까지 곱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또 9단이 마지막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의 어느 중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중학교 2학년 학생 중에 공부를 거의 포기한 학생이 있었다. 특히 수학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가감승제(加減乘除)도 해결하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수학이 전공인 담임선생님은 어느 날 이 학생에게 6개월을 정하여 곱셈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치기로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덜 답답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처음엔 보통 구구단을 외우는 방법으로 2단부터 차례대로 외우게 했다 그러나 이 학생에겐 아무리 반복해서 가르쳐도 효과가 없었다. 궁리한 끝에 방법을 바꿔 보기로 하였다.

선생님은 기존의 방법에서 탈피하여 5단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5단을 손으로 쥐었다 폈다 하면서 외우게 하였다. ‘오일은 오’는 손을 쥐고 ‘오이 십’은 손을 폈다. 오와 십으로 끝나는 5단은 구구의 원리를 깨치기에 가장 쉬운 구구단이었다. 다음에는 2단→4단→8단 순서로 외우게 하였다. 4단의 반은 2단의 답과 중복되고, 8단의 반은 4단의 답과 중복되기 때문에 외우기 쉬웠다. 다음은 3단→6단→9단의 순서였다. 7단을 마지막에 외우게 하였다. 이렇게 순서만을 바꾼 결과 이 학생은 그리도 못 외우던 구구를 석 달 만에 외울 수 있었다.

부모는 아들의 초등학교 시절에 곱셈 구구만이라도 외우게 하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다고 한다. 과외도 시켜 보았고 학원 강사도 동원하였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다. 대부분 구구는 당연히 2단부터 외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부모는 자기 아들이 구구단을 줄줄 외우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만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들이 짧은 기간에 갑자기 구구를 외울 수 있게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구구단을 외우고 이해하게 된 아들의 모습에 부모는 너무나 기뻐서 담임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런 부모님이 기쁨의 설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포기했던 아들의 잠재력이 교육 방법의 변화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고, 방법만 잘 찾는다면 아들의 앞날도 절망만은 아니라는 실낱같은 빛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부모조차도 포기한 제자에게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하여 3개월 만에 곱셈 구구를 외우게 한 선생님. 고뇌와 교육 방법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 듯싶다. 이런 선생님이 교단에 계시기에 우리 교육의 미래가 밝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배종수 서울교대 교수·수학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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