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칼럼]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교육

  • 입력 2003년 12월 19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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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고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장기적으로 체력을 키워 병을 다스리는 방법은 시간이 걸리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반면에 강한 약을 쓰는 방법은 당장 고통이야 줄겠지만 단기요법에 불과하다. 올해 사회 각 분야 가운데 특히 교육부문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한 해를 보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갈등을 시작으로 교장 자살사건, 대학수학능력시험 복수정답 파문 등 충격적인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뒤늦게 사의를 표했다지만 내년이라고 뭐가 나아질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치료법을 확 바꿔 보면 어떨까.

▼교육개혁의 우선순위 ▼

우리 교육정책은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사교육비 경감 등 주변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왔다. 주로 입시제도를 바꿔 사교육을 잡는 방법이 동원됐다. 단기간에 강한 약을 투입하는 방법이다. 현 정부도 연말 안에 대대적인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발표한다고 하고, 내년 3월에는 수능제도 개선 대책을 내놓는다는 소식이다.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에 허덕이는 국민은 정서적으로 이런 대책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가 과외문제에 관한 한 안 써본 대책이 있었던가. 지난 수십년간 외국에서 좋다고 이름난 입시제도는 모두 들여와 한번씩 써 봤으나 결과적으로는 백약이 무효였다.

문제는 제도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있었다. 명문대 입학을 위해 사람들은 공정경쟁보다는 사교육을 통해 경쟁을 뚫으려 했다. 내신이나 추천서 같은 주관적 평가는 불투명성 때문에 배제됐고 점수로 매겨지는 객관적 수치를 선호했다. 그래야 입시결과에 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시부정은 얼마나 많았던가. 입시도 일그러진 우리 사회구조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었기에 어떤 제도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입시제도 변경을 통해 사교육을 줄이려는 접근방식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는 편이 낫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교육을 살리는 것이다. 공교육 서비스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사교육 수요를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면 된다. 병을 고치기 위해 체력을 기르는 방법이다. 말은 쉽지만 이 방법은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당장 사교육비를 줄였으면 하는 국민정서와도 거리가 있다. 하지만 사교육 우위 현상을 타파하는 데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면 힘들더라도 이 방법으로 나가야 한다.

따라서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이 공교육의 획기적인 혁신 대책이다. 그러나 사교육에 대한 논의는 무성해도 공교육 대책은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새 교육부총리로 어떤 분이 될지 모르지만 먼저 공교육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그 청사진을 국민 앞에 제시하고 그 다음에 단기요법으로 사교육비 대책을 내놓는 게 올바른 순서다.

우리가 사교육비와 장기간 씨름하는 동안 놓쳐 버린 중대한 문제가 있다. 바로 대학개혁이다. 교육의 최종목표가 무엇인가. 결국 인재 육성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교육정책은 한참 잘못됐다. 모두가 입시문제에 진을 빼는 동안 대학들은 경쟁 없는 안온한 삶을 즐겨 왔다. 지방대학들이 신입생이 모자라 쩔쩔매게 된 것은 요 얼마 전부터의 일이다.

우리 대학의 낙후된 경쟁력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의 경제규모가 세계 12위, 국가경쟁력이 세계 15위인 반면 고등교육의 경쟁력은 세계 28위에 머물고 있다. 조사대상이 인구가 2000만명 이상인 30개국이므로 꼴찌나 다름없다.

대학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더욱 앞이 캄캄하다. 인문학과 이공계의 위기는 이제 진부한 얘기가 돼 버렸고 모두가 의사와 변호사를 지망하는 상황에서 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이 발족되면 학부 대학은 ‘준비학원’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우리가 수능 문제가 어떻고 학생부 CD가 어떻고 하는 데 온 힘을 쏟는 동안 경쟁국들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세계적인 대학을 키우느라 분주하다.

▼대학개혁부터 서둘러라 ▼

새 교육부총리는 대학개혁부터 서둘러야 한다. 대학개혁은 입시경쟁 완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쟁체제를 통해 세계 수준의 대학이 여럿 등장하면 수험생들은 누가 가지 말라고 해도 그 대학에 몰리게 되어 있다. 특정 대학 쏠림 현상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학벌주의와 ‘서울대 병’을 한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대로 세월을 허송하다가는 10년, 20년 후 우리의 미래는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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