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투성이 건강보험공단, 파업기간 임금 편법보전

  • 입력 2000년 12월 5일 18시 34분


재정이 바닥 상태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박태영·朴泰榮)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스스로 저버리고 파업 노조원 1인에 300만원씩 지급하고 해당노조원들에게 4개월간 시간외 근무를 시켜 그 수당으로 지급액을 갚도록 노조측과 합의했다.

공단측은 원칙의 엄격한 적용이란 공언과 달리 생활안정자금 명목으로 파업노동자의 임금을 사실상 보전해 주기로 함으로써 공기업 모럴해저드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역의료보험노조원은 현재 6000여명으로 이들에게 300만원씩 지급하려면 180억원이 필요하다. 공단측은 6월말부터 9월 하순까지 84일간의 파업 기간 중 임금과 수당을 받지 못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노조측이 대책마련을 요구하자 이같이 노조와 합의했다.

합의된 시간외 수당 지급기간은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4개월간이다. 공단측은 지역의보 노조원 7500여명의 파업 당시 무노동 무임금 및 인사 경영권 원칙을 지키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지난달 6일 노조와의 단체협약에 이를 명문화했다.

그런데 본사가 입수한 노사의 최근 합의문은 ‘대외적 명분을 고려해 생활안정자금은 시간외수당에서 상환한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시간외 근무는 하되 (근무시간에 따라 수당을 정하는) 실적급적 시행을 강제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토록 한다’고 명시해 시간외 근무가 파업기간의 임금을 편법으로 보전하기 위한 방안임을 보여주고 있다.

공단은 파업기간에 직장의료보험 노조원 등 대체인력을 투입해 지역의보 업무를 처리했기 때문에 사실상 파업으로 인해 밀린 업무는 거의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 같은 노사합의는 특히 적립금까지 바닥난 보험재정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역의보는 올해 5437억원의 당기 적자가 예상돼 올해 말이면 지난해 말까지 남아 있던 적립금(3995억원)을 모두 까먹고 1442억원의 재정부족이 예상돼 자칫 환자들이 보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본보 4일자 A31면 참조). 노조원에게 ‘시간외수당’ 180억원을 지급할 경우 재정난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의보노조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뒤늦게 알고 “편법적인 임금보전 계획을 취소하고 기안자를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한 뒤 인사조치하라”는 공문을 공단측에 보냈다.

그러나 공단은 4일 노조와의 최종협상을 통해 생활안정자금을 지급키로 한 뒤 전국 지사별로 접수를 하고 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