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盧대통령 ‘고장난 국정운영’ 修理 어렵나

  • 입력 2005년 7월 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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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홈페이지에 띄운 글을 통해 “정치가 잘돼야 경제가 잘된다”고 강조했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이 제기한 ‘연정(聯政) 필요론’을 뒷받침하려는 말로 들린다. 노 대통령은 또 경제민생점검회의를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맡긴 데 대해 ‘정치 다걸기(올인)의 신호탄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냉정을 잃으면 수준을 잃기 쉽다”고 역공했다.

우리는 노 대통령의 연정 관련 발언 이후 정국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는 현실을 보면서, 작금의 상황이 빚어지기까지의 경과를 되짚어 볼 필요를 느낀다.

노 대통령은 작년 말부터 ‘경제 올인’에 나서겠다는 각오를 여러 번 밝혔다. 국민은 기대를 걸었다. 한쪽의 이해나 이념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보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서 국가 성장 동력을 되살리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국정운영을 해 달라는 소망이 컸다. 그 후 여소야대를 낳은 4·30 재·보선의 메시지도 같았다. 기존의 정책 틀과 ‘코드형’ 인재풀로는 국정난맥상을 풀기 어려우니 인사쇄신을 통한 심기일전(心機一轉)으로 국정을 바로잡아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많은 국민의 기대에 역행(逆行)했다. 정책에 실패한 참모 등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에는 ‘측근과 선거 낙선자들을 요직에 전진 배치하는 인사’로 답했다. “누가 뭐래도 내 식대로 하겠다”는 오기(傲氣)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정책실패에 대한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하기보다는 온갖 논리를 동원해 반격에 몰두했다.

전방소초 총기난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윤광웅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내자 노 대통령은 거꾸로 ‘여소야대의 한계’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만들어 준 국회 과반의석을 갖고 열린우리당이 주로 해 온 일은 국가보안법 과거사법 신문법 사학법 등 4개 법안을 둘러싸고 야당과 충돌하면서 이념 갈등을 증폭시킨 것이었다. 연정 필요론에 대해 ‘실정(失政)을 제도 탓으로 돌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성적표는 경제 올인 다짐을 무색하게 한다. 올 성장률은 전망치가 3%대로 다시 내려가 3년 연속 잠재성장률을 밑돌 조짐이다. 정부는 1분기 2.7%의 저(低)성장을 ‘담배 생산 감소’ 때문이라고 해명하더니 이번에는 ‘유가 급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렇다면 같은 상황인 중국(9.5%) 인도(8%) 등의 고성장 추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기업투자가 외환위기 직전의 70%에 불과하고, 내수 부진으로 경제성장의 80% 이상을 수출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일본식 장기불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조차 가시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총리는 “서민생활이 안정됐다”는 말로 서민들의 속을 뒤집었다.

노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했던 부동산정책은 시장의 흐름을 무시함으로써 사실상 좌초했다. 6·17 당-정-청 간담회에서 20여 차례 대책의 ‘총체적 실패’를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다시 “서울 강남 일부의 집값이 올랐을 뿐”이라는 무책임한 발언이 청와대와 경제부처 쪽에서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의 국정 어젠다 설정 기능이 고장 났다는 진단이 나오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오늘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운영의 새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그러나 국정을 다잡기 위한 선결 과제는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되찾는 일이다. 노 대통령이 강조한 ‘경제를 잘되게 하는 정치’도 대통령의 말과 국정운영 청사진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노 대통령은 ‘연정 필요성과 개헌 논의 공론화’ 발언에 비판이 일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실패를 호도하기 위해 판을 흔들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 섞인 반응이 왜 나오는지 냉정히 돌아보기 바란다. 국민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보는 법이다. 냉정을 잃으면 수준을 잃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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