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관이 한국인 망신시켜"…대사관 초상집 분위기

  • 입력 2001년 11월 2일 23시 47분


마약범죄 혐의로 중국에서 처형당한 한국인 신모씨(42) 사건과 관련해 사형집행 사실을 사전에 통보했다는 중국 외교부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진 2일 오후 베이징(北京)의 주중한국대사관은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다.

문서수발을 담당한 주중대사관의 관계자는 “정말 면목이 없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한국측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진 직후 주중대사관의 최고책임자인 김하중(金夏中) 대사는 사무실 문을 굳게 잠근 채 외부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 오전까지만 해도 김 대사는 “문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왜 이런 식으로 중국측이 나오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이날 밤 베이징시 차오양구 산리툰 외교가에 있는 3층짜리 한국대사관은 밤새 불을 밝힌 채 대책 마련에 골몰하는 모습이었다.

대사관 직원들도 퇴근을 미룬 채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 직원은 “92년 한중수교 이래 가장 엄청난 실수”라며 “앞으로 문책의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모르겠다”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상사원이나 교민들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베이징에 회사가 있는 L기업 H상사원(41)은 “주중 한국공관이 한국인 망신을 시키고 있다”며 “앞으로 중국 바이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국에 투자한 S사의 K씨(47)는 “이래서야 중국측이 구금 중 가혹행위를 한 것 등에 대해 어떻게 항의할 수 있겠느냐”며 “실추된 공관의 권위를 회복하고 재외국민의 신뢰를 얻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베이징대 유학생 P씨(25)는 “우리 대사관이 교민 보호는커녕 이렇게 거짓말까지 해서야 되겠느냐”고 허탈해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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