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대담]"부시 필요하다면 압도적 군사력 행사"

  • 입력 2001년 1월 2일 18시 46분


▽김학준 고문〓새해의 세계 정세,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끌 미국 공화당 행정부의 출범 이후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커티스 교수〓큰 흐름만 놓고 볼 때 새해의 세계 정세에서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성’이란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세계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국제정치 전반에 대한 미국의 단독적 패권 국가로서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될 것입니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강력한 미국’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단독적 패권에 맞설 만한 국가가 앞으로 1∼2년 안에, 또는 적어도 5년 안에 출현하리라고 믿을 수 있는 증거는 보이지 않습니다. 러시아는 비록 젊은 푸틴 대통령이 ‘강력한 러시아’를 외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내부적 약점을 많이 안고 있습니다. 국제 정치 전반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적어도 앞으로 5년 동안에는 결코 크지 않을 것입니다.

 새해 석학 대담
- 美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
- 美 동아시아 전문가 제럴드 커티스
- 美 한반도 전문가 김영진 교수에 듣는다
- 美 철학자 리처드 로티 교수
- 佛 피에르 레비교수-김동윤교수

▼러 푸틴 5년간 內治급해▼

중국은 평화적 길을 통해 민주화로 가느냐 아니면 여전히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할 것이냐의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만일 중국이 평화적 민주화의 길에 접어든다면 중국의 장래는 밝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에서는 자본주의를 표방하면서 정치에서는 구시대적 1당 독재를 유지하는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중국이 대외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반응적 대외정책’을 취했습니다. 즉 자신의 독자적인 대외정책의 길을 걷기보다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따르거나 주변 국제 정세에 반응하는 길을 걸었다는 뜻입니다. 일본의 이러한 대외 행태에는 본질적인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유럽연합(EU)은 부분적으로 내부적 갈등을 나타내고 있으며, 유럽 내부 일각에서 ‘유럽 쇠퇴’에 대한 우려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항할 만한 독자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EU와 미국 사이에 부분적으로 갈등이 표출되는 점에 대해서는 계속 주시해야 하겠습니다.

▼중국 체제변화 갈림길 고민▼

▽김학준 고문〓대체로 저도 같은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에 대해서 더 토론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영국의 몇몇 중국 전문가들이 말하는 중국 분열론입니다. 중국이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을 위해 개방 정책을 취한 이후 그 성과에 따라 해안 지역의 성(省)들과 내륙 지역의 성들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면서 분열로 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 말입니다. 또 일본 일각에서도 공공연히 중국 분열론이 거론되고 있지 않습니까

▽커티스 교수〓저도 그런 취지의 논문들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분열을 촉진시키는 원심력을 안고 있음이 사실이나 역사적으로 통합을 지향하는 구심력이 강한 나라입니다. 또 대만이 독립을 꿈꾸는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그래서 대만과의 관계에서 때때로 긴장이 감돌 때마다 민족주의 분위기가 강화되곤 합니다. 최근에 미국 정부가 러시아 및 북한과 함께 중국도 견제망 속에 포함시켜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와 전역(戰域)미사일방어체제(TMD)를 논의하자 중국은 더욱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중국에서는 원심력이 크게 약화되고 구심력이 강화될 것입니다.

▽김학준 고문〓미국에서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는 중국을 1차적으론 ‘전략적 동반자’로 보면서도 2차적으론 중국을 ‘미래의 경쟁자’로 보는 견해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부시 공화당 행정부를 이끌어 갈 사람들은 일찍부터 동반자로 보다는 경쟁자로 여기는 태도를 분명히 해왔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커티스 교수〓저는 중국이 점차 커지는 경제력과 거기에 상응하는 군사력으로 장차 미국과 일본 등에 대해 위협을 가하리라는 전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중국이 그동안 군사력을 꾸준히 증강시켜 일본의 군사력 수준에 접근한 것은 사실이나, 중국의 힘에는 앞으로도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중국은 서방세계와의 협력이 자신의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주변에 중국위협론을 믿는 이들이 있음은 사실이며, 따라서 거기에 입각해 중국 정책을 취하는 경우,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마찰음이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대만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협력을 강화하는 경우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기업인들 사이에는 광대한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더욱 증진시키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미―중관계를 비(非)갈등적 관계로 이끌 강력한 요인이 될 것입니다.

▽김학준 고문〓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어떤 정책을 취하리라고 예상하십니까?

▼일본 재무장 올핸 위협 안될듯▼

▽커티스 교수〓역시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세부적으로 보면 첫째, 일본에 대해 그리고 미―일 동맹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고 중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쏟을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없이 미―일 동맹을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초석으로 여겼습니다. 둘째, 대외적 수사(修辭)는 더 강해질 것이고 전술에서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셋째, NMD와 TMD를 강력히 추진할 것이고 이 점에서 보이듯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것입니다. NMD와 TMD의 1차적 대상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및 북한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을 높이는 것에 반비례해 재래식 병력에 대한 의존을 낮춰, 예컨대 서유럽에서 주둔군의 감축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되어 군사적 긴장완화가 가시화되는 경우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라는 여론의 압력은 커지지 않을까요? 넷째, 비록 ‘강력한 미국’이란 구호를 쓰고 있고 ‘힘의 행사’에 주저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으나 군사력을 쓰는 데 매우 신중할 것입니다. 클린턴 행정부 때는 인도주의적 명분 아래 가령 코소보 사태 때 파병한 일이 있었습니다만, 부시 행정부 때는 인도주의적 일에 군사력을 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조할 점이 있습니다. 한번 쓴다 하면 압도적인 군사력을 동원해 끝장을 낼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섯째, 부시 행정부는 미국 이외의 어떤 단일 국가가 동아시아 또는 태평양 지역을 지배하는 것을 특히 해군력으로 반드시 막고자 할 것입니다.

▽김학준 고문〓일본의 꾸준한 군사력 증강 또는 군사 대국화 경향에 대해 이웃나라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 경향은 미국의 ‘종용’ 아래 재촉될 것으로 보이며 미―일 군사동맹이 더욱 강화되면 중국의 경계 역시 강화되어 이 지역에서 새로운 긴장이 조성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 아닌가 주시하게 됩니다.

▼한반도 4강 균형 활용기회▼

▽커티스 교수〓그러한 우려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실제로 일본은 1996년에 미국과 합의한 ‘신(新)안보선언’을 계기로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 대해 군사적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습니다. 재무장과 해외 파병을 금지한 일본 헌법 제9조, 이른바 평화조항은 사실상 그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만,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는 적어도 2001년 한해를 놓고 볼 때, 비교적 안정적일 것입니다. 군사적 대결보다 화해와 협력이 서로에게 유익하다는 점을 깊이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겠습니다. 부시 대통령 당선자는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따라서 파월 국무장관 내정자와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내정자 등에 크게 의존할 것인데, 이들은 동아시아 전문가가 아닙니다. 한국 정부로서는 이들을 상대로 자신의 대외정책, 대미정책, 대북정책 등에 대해 미리 설득력있게 설명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하게 대하고자 할 것입니다. 또 북한과의 수교라는 과제에 대해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훨씬 덜 열성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 여부에 따라 자신의 임기 안에 북한과 대사급의 외교관계는 몰라도 연락사무소급의 공식 관계는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북한과의 수교에 있어서 일본은 서방국가들 가운데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일본은 그 뒤를 따라갈 것입니다. 한반도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에서 발생한 진전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21세기의 초기엔 반드시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를 기원합니다.

▼제럴드 커티스는 누구▼

제럴드 커티스(Gerald L. Curtis·61)교수는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 태평양연안연구소 소장으로 ‘뉴스위크’지 편집고문을 겸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동아시아 전문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특히 미―일관계에 대해서는 세계 정상급 정치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1969년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박사

△1969년 이후 컬럼비아대 한국연구소장과 동아시아연구소장 역임. 현재 컬럼비아대 정치학과 교수

△1976∼77년 일본 도쿄(東京)대 객원교수

△1982∼83년 일본 게이오(慶應)대 객원교수

△‘미국 일본 아시아:미국정책에 대한 도전’ ‘냉전 이후 일본의 대외정책’ 등 10권의 저서.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일본 전총리기념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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