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읽어내는 지혜[클래식의 품격/나성인의 같이 들으실래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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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30대 중반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던 바흐는 바이마르에서 궁정악장 자리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바이마르 공이 벌써 여러 번 바흐의 이직을 막아가며 바이마르에 붙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리는 전임자의 아들 차지가 되고 말았다. 바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바흐는 발에 먼지를 털어버리듯 쾨텐으로 가게 된다. 칼뱅파에 속하는 이 도시는 큰 규모의 교회음악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바흐로서는 가장 중요한 작곡 영역 하나를 잃게 된 셈이었다. 그나마 쾨텐 제후 레오폴트 공이 음악 애호가였고, 비록 규모는 작지만 아주 뛰어난 악단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첼리스트인 리니케, 악장 슈피스, 솔로 오보이스트 로제, 파고티스트 토를레 등은 당대의 뛰어난 기악 연주자들이었다. 바흐는 그들의 연주에서 영감을 얻었고, 자연스럽게 기악 음악에 집중하게 되었다.

1721년 3월 24일, 막 36세가 된 바흐는 쾨텐의 신민으로서 브란덴부르크의 변경백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에게 이른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헌정했다. 바흐는 이 여섯 개의 협주곡을 통해 ‘잘 갖춰진 궁정음악’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1720년대에 잘 갖춰진 궁정음악이란 호른과 트럼펫, 오보에, 바이올린, 파곳, 첼로, 비올라 다 브라초와 비올라 다 감바, 플루트와 하프시코드 등의 악기가 빠짐없이 구비돼 있는 것을 뜻했다. 쾨텐은 연주자의 기교가 뛰어났으니 바흐로서는 마음껏 원하는 악상을 풀어낼 수 있었다.

작품의 모티브 또한 제후의 미덕을 나타내고 있었다. 제후의 미덕이란 사냥, 용맹함, 예술 애호, 애민, 건강한 신체, 그리고 사려 깊음 등이었는데 이는 헤라클레스의 용맹함, 미네르바의 지혜 등 신화적인 이미지로 표현되곤 했다. 여섯 곡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각각 이러한 미덕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은 순수한 ‘절대음악’이라기보다는 변경백을 드높이고 칭송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일종의 표제적인 음악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위대한 예술성이 있어도 아직 하인의 지위에 있었던 당시 음악가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 준다. 그러나 이 사례는 동시에 예술가와 후원자의 신뢰 관계가 훌륭한 작품의 출발점이 됨을 말해주기도 한다.

때때로 삶에는 예기치 않은 변화가 찾아온다. 바흐는 교회음악을 쓰지 못하게 되었지만 기악음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쾨텐의 작은 앙상블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외에도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무반주 첼로 모음곡’ 등 걸작을 탄생시켰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바라보며 변화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바흐의 성실성과 변화하는 삶의 조건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명민함을 마음에 담아둬도 좋을 것이다.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변화#바흐#지혜#괴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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