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청 ‘속도조절’ 논란, 지금이라도 매듭지어야[광화문에서/황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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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준 정치부 기자
황형준 정치부 기자
“수사권 개혁의 안착과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돼서는 안 된다.”

지난달 24일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장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1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했다는 이 발언을 놓고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 실장이 문 대통령의 이 말을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및 공소청 설치에 대해 “박 장관에게 속도조절 당부를 한 것”이라고 밝히자 김 원내대표가 부랴부랴 가로막은 것. 이후 유 실장은 “속도조절이라는 표현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지만 본인의 해석이었는지 실제 어떤 말이 있었는지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 2인자’의 말을 여당 원내대표가 아니라고 반박하자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야당에서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발언을 잘못 해석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여당 원내대표의 추궁에 문 대통령 의중을 숨긴 것이라면 불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에 검찰의 수사권을 아예 경찰에 넘기는 식으로 수사권·기소권 분리를 주장했지만 정권 출범 뒤에는 검찰의 수사권 중 일부만 경찰에 넘기는 방향으로 한발 물러섰다. 그 결과 현행대로 검찰에 부패범죄 등 6대 범죄에 대한 직접수사권은 남겨 놓은 것이다. 검찰의 집단 반발과 ‘여소야대’였던 20대 국회의 여야 협의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궤도 수정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라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추진하는 중수청 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게 아니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같은 별도의 수사기관을 만들자는 것이어서 문 대통령의 당초 구상과 차이가 있다. 상황도 달라졌다. 한 검찰 간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으로 올해부터 연말까지 검찰, 경찰, 법원이 연동되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 개편에 예산 105억 원이 들어가고 있는데 중수청 법안이 통과되면 이 예산을 그대로 날리는 것”이라고 혀를 찼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중수청 설치는 내년에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뒤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를 명분 삼아 사퇴하고 나서야 문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국회에서 논란이 된 지 10여 일 만에야 처음 입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8일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는 앞으로도 꾸준히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며 “이미 이뤄진 개혁의 안착까지 고려하라”고 밝혔다. 중수청 설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사실상 속도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수청을 추진하려는 여당의 체면은 살리면서도 검찰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을 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지금에라도 중수청에 대한 방향을 언급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수청 논란에 대해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더 분명한 메시지로 중수청 논란에 대해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이다.

황형준 정치부 기자 constant25@donga.com
#중수청#속도조절#수사권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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