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워킹맘 리더들[횡설수설/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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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의 덫: 왜 성공한 여자들은 아이가 없을까.’ 영국 정치주간지 뉴스테이츠먼은 2015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테리사 메이 당시 영국 내무장관을 포함해 무자녀 여성 리더들의 이야기를 특집으로 다뤘다. 이 기사는 사회학 연구를 인용해 ‘아버지가 되면 보너스, 엄마가 되면 페널티’를 주는 사회 분위기가 일과 육아의 병행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남자들은 자녀가 생기면 더욱 안정감 있고 헌신적으로 변하는 반면 여자들은 일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 정치인들은 남성들보다 자녀가 적고, 정치에 입문하는 시기도 늦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5남매를 키워 놓고 47세에 첫 선거를 치렀다.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는 의원 시절이던 1960년 정치인으로서 포부를 묻자 “쌍둥이 남매가 클 때까진 더 책임 있는 자리를 맡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엄마임을 내세우는 ‘현역 엄마’ 리더가 많아졌다.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을 노리는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는 남편이 전 부인과의 사이에 둔 남매 얘기를 많이 한다. “애들이 나를 새엄마가 아닌 모말라(Momala·엄마 역할을 해주는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라고 부른다. 그동안 숱한 직함을 가져봤지만 모말라가 최고다.” 2018년 중간선거 때는 임신해 배가 불룩하거나 수유하는 사진을 홍보용으로 쓰는 여성 후보가 많았다.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후보자는 일곱 남매 덕분에 보수의 가치를 상징하는 스타가 됐다. 민주당 의원들도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낙태에 대한 입장을 따지기 전 “일과 양육 모두 훌륭히 해내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엄마 이미지가 정치적 자산으로 바뀐 데 대해 정치학자들은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보다는 공감 능력이 있는 여성적 리더십이 각광받는 추세이고 △정치인의 개인적 면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족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산나 마린 핀란드 여성 총리는 SNS로 임신과 육아 경험을 공유한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딸아이를 재워두고 SNS로 일상적 대화를 나누듯 정책에 대해 설명하며 지지를 얻었다.

▷일과 육아의 병행에 성공한 이들은 고학력 전문직 여성으로 협조적인 남편을 뒀으며 유연한 근무 시스템의 수혜자들이다. 배럿 후보자는 재판이 없는 시간에 아이들 학교 일을 봤고, 아던 총리는 생후 3개월 된 딸을 안고 유엔 총회에 참석했다. 젖먹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은 많지 않다. 엘리트 여성들이 애써 쟁취해 낸 권리가 워킹맘들의 보편적인 일상이 됐으면 좋겠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여성 리더#육아#워킹맘#모성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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