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무대만 서면 실수하는 나… ‘금메달 마인드’가 필요해[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 동아일보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승패와 경쟁이 일상인 운동선수들… 정신과 동작 다스릴 심리 코칭 중요
결과 집착 내려놓는 의연함은 필수… 세부 계획-반복 연습이 자신감 충전
‘평소 역량 70%만 발휘해야지’… 현실적 목표 설정 후 실전 임해야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실전에서 ‘잘하겠다’는 마음은 독이 된다. 결과에 대한 집착과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앙대병원 제공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실전에서 ‘잘하겠다’는 마음은 독이 된다. 결과에 대한 집착과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앙대병원 제공
정신의학 상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친밀감과 신뢰가 쌓여야 환자가 마음을 연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은 이 과정을 정석대로 밟기 어렵다. 밤늦게 경기가 끝나고 연습 시간도 들쭉날쭉하다. 시합은 당장 내일이다. 이들에게는 마인드를 다스릴 빠르고 실질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포츠 현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정신의학 상담을 건너뛰듯 진행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며 “스포츠 정신의학은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족집게 과외’를 받는 것과 비슷한 성격”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국내 1세대 스포츠 정신의학 전문가다. 선수들이 노력만큼 운동하고 평소 실력대로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돕는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 국가대표선수단과 동행했고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멘털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다.

곧바로 적용 가능한 그의 멘털 코칭 방식은 큰 무대, 경쟁 프레젠테이션(PT), 주요 시험을 앞둔 일반인도 참고할 만하다. 한 교수는 “내 목표를 알고 자신의 객관적 실력을 인정하며 과정에 집중하면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결과에 대한 집착과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 ‘금메달 마인드’ 갖추려면

중요한 경기를 앞둔 선수들 머릿속은 대체로 비슷하다. 평소 실력만큼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상황을 걱정한다. 실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평소보다 못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교수는 그럴 때마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가 있으라”고 조언한다.

‘과정에 가 있다’는 건 현재 동작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골프채를 휘두르는 자세, 배트를 올리는 팔의 움직임, 슛을 던지는 손가락의 리듬에만 집중해야 한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관중의 반응, 결과에 대한 여론, 경기를 망친 뒤 겪을 슬럼프 등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무의식이 과정이 아닌 결과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없애야 할까. 첫째로 갖춰야 할 건 의연함이다. 금, 은, 동을 가르거나 역전당할 위기에 놓인 순간. TV 앞 시청자들 심장은 터질 듯한데 정작 선수들은 의연한 경우가 많다. 한 교수는 “엘리트 선수들은 주요 무대에서도 아등바등하지 않고 평소대로 임한다”며 “의연함은 타고나는 부분이 크지만 훈련으로도 기를 수 있다”고 했다.

의연함은 작은 세부 계획과 반복 연습에서 나온다. 방법은 이렇다. 최종 목표를 잡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한 부분 목표를 정한다. 그런 다음 부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들을 익힌다. 그 방법(동작이나 마인드 컨트롤 등)을 하나하나 ‘도장깨기’ 하듯 성취하다 보면 자신감이 쌓인다. 큰 무대에서도 수행하는 동작에만 집중할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루틴이다.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루틴은 긴장과 불안 속에서도 차분히 동작을 수행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하나, 둘, 셋, 넷에 맞춰 무조건 드라이버를 친다’ ‘깃대를 보고 어프로치 자세를 잡은 뒤 연습 스윙을 몇 번 반복하고 샷을 한다’ 같은 행동 루틴을 따르는 식이다. 한 교수는 “의도적으로 루틴을 만들면 동작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다. 선수마다 10∼30초 정도 위기에 대응하는 의식이 있다”고 했다.

● 슬럼프 극복 비결은 ‘플랜 n’


운동선수에게 승패는 일상이다. 경쟁 스트레스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중 가장 압박감을 느끼는 순간은 지고 있을 때다. 역전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하면 부정적 감정에 휘말리기 쉽다. ‘나쁜 결과→부정적 감정→포기’로 생각의 흐름이 고속도로를 탄다.

한 교수는 “경기가 잘 안 풀릴 땐 생각을 멈추고 중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중립은 경기 시작 당시의 상황과 마음가짐을 뜻한다. 이 역시 연습을 통해 몸에 익혀야 실전에서 적용할 수 있다. 경기가 꼬일 땐 끝까지 진행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흐름을 끊어야 한다. ‘멈춤→마음을 비우고 중립으로 돌아감→경기 재시작’ 과정을 반복하면서 몸과 마음을 조율하는 것이다.

슬럼프도 비슷한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다. 평소의 성취가 일정 기간 부진한 걸 슬럼프라고 한다. 대부분 선수는 한 번쯤 슬럼프를 겪는다. 한 교수는 “슬럼프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빨리 극복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엘리트 선수들은 슬럼프를 짧게 겪는다”고 했다.

비결은 ‘플랜 n’이다. 노력만큼 실력이 나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평소 여러 대안을 준비해 둔다. 좋은 선수일수록 계획이 많다. 예를 들어 야구선수는 방망이를 잡는 손 위치나 팔 각도, 엉덩이 굽힘 정도를 바꾸며 스윙을 조정한다. 축구선수는 슛 자세나 패스 타이밍을 조절한다. 한 교수는 “슬럼프엔 무의식적으로 빠지지만, 빠져나갈 계획은 의식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부진을 빨리 털어낼 수 있다”고 했다.

실력 정체도 중대 위기다. 있는 힘껏 노력해도 실력이 그대로면 자신에 대한 원망이나 공격적인 생각이 올라온다.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왜 안 될까’ ‘나만 못 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불만은 보통 자기 비하로 귀결된다. 한 교수는 이럴 때 두 가지를 따져보라고 했다.

첫째는 ‘올바른 노력을 하고 있느냐’이다. 성취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적절하게 쓰고 있는지 살피라는 뜻이다. 둘째는 ‘성공의 가치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다. 재능, 노력, 근성은 20등인데 눈높이만 1등인 사람은 평생 성공에 도달할 수 없다. 한 교 수는 “1등주의에 매몰되기보다 나의 능력에 맞는 성공의 가치를 인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 평소 역량만큼만


일반인도 누구나 경기장과 비슷한 무대를 한 번쯤 경험한다. 연주회, 입찰 PT, 주요 시험 등이 대표적이다. 중요한 순간 실수가 잦은 이를 두고 ‘두부 멘털’ ‘유리 멘털’이라고들 한다. 김 교수는 “멘털은 인간성 만큼이나 모호한 용어다. 실수의 원인은 낮은 집중력, 불안정한 감정 상태, 높은 불안 수준 등 다양하다”며 “멘털 관리란 내 약한 심리적 고리를 단단히 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은 보완책을 찾는다. PT 자료 주요 문장에 형광색으로 표시를 해 두고 그것만 따라가는 식이다. 기분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은 부정적 감정을 바꾸는 자신만의 처방을 익혀둔다. 걷기, 방 청소, 햇빛 쬐기, 대화, 독서, 명상, 복식호흡, 잠언 읊기, 특정 장면 떠올리기 등 다양하다.

불안은 증상 완화에 촛점을 둔다. 예를 들어 호흡이 가빠지거나 얼굴이 붉어지면 나만의 의식을 통해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린다. 한 교수는 “마운드에만 서면 얼어붙는 한 야구선수는 타자의 배트 상표를 응시하는 행동으로 불안을 극복했다”며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는다 △자기만의 시선 포인트를 정해둔다 △신호로 정한 단어를 되뇐다 △심리적 안정을 주는 특정 행동을 만든다.

현실적인 목표 설정도 중요하다. 평소보다 잘하겠다는 마음은 금물이다. 평소 50점 맞는 학생이 90점을 기대하면 모르는 문제를 만났을 때 패닉이 와서 시험에 독이 된다. 관객 100명 모두에게 칭찬받기 바라는 마음은 훌륭한 연주라는 본질을 흐린다. 한 교수는 “자신감을 갖되 역량의 70%만 발휘하겠다는 마음으로 실전에 임해야 한다. 결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평소 역량만큼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일반 직장인들의 경쟁 스트레스도 운동선수 못지 않다. 인사고과와 승진 시즌을 의연히 넘기려면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 할까. 한 교수는 나의 상황을 ‘건조한 내레이션 기법’으로 읊을 것을 권했다. 나의 능력과 경쟁자 등을 중립적으로 살핀 뒤, 현실적인 목적 달성에 필요한 단계를 간략하게 말하는 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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