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軍 영창[횡설수설/이태훈]

이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0-07-31 03:00수정 2020-07-31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너 그러다 영창 간다.” 군대에서 군기가 빠진 졸병들을 보고 고참들이 훈계용으로 흔히 했던 말이다. 어른들이 투정 부리는 아이에게 “호랑이가 잡아 간다”고 겁을 줬던 것처럼 영창은 병사들에겐 큰 공포였다. 영창은 또 군 복무 기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하루가 1년처럼 느껴지는 군 생활에서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인식됐다.

▷흔히 ‘군대 유치장’으로 알려진 영창은 부대에서 몰래 술을 반입해 먹거나 구타 같은 군기 문란 행위를 하다가 적발될 경우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징계 처분이다. 경계근무 중 졸거나 상관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기강 해이가 발생해도 처해질 수 있다. 최대 15일까지 군사경찰(옛 헌병대)에 한시적으로 수감한다. 살인 등 범죄를 저지른 기결수 병사들이 수용되는 국군교도소와 달리 형사 처벌 전력을 일컫는 ‘빨간 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2013년 연예병사들이 야간에 숙소를 무단이탈해 술을 마시는 등의 일탈행위를 하다가 적발돼 영창 처분을 받기도 했다.

▷영창은 부대 내 장교 등이 참여하는 징계위원회 의결을 거쳐 지휘관의 처분으로 결정된다. 실질적으로 신병(身柄)이 구속되는 것인데도 법관이 아닌 지휘관의 재량으로 하다 보니 법적 근거 없이 신체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 헌법은 ‘판사가 발부한 영장 제시 없이는 구속할 수 없다’는 영장주의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다.


▷지금이야 가혹행위나 얼차려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과거에는 철창에 매달려 매미 울음소리를 내도록 하거나 가부좌를 틀고 장시간 꼼짝 않고 앉아 있도록 강요하는 정좌자세 유지 등 많은 인권 침해가 있었다. 기합받는 자세가 불량하다며 군홧발로 전신을 마구 폭행한 헌병이 구속된 경우도 있었다.

주요기사

▷이런 논란도 이제 마침표를 찍게 됐다. 국방부는 영창을 군기교육으로 대체하고 감봉, 견책 등을 도입하는 군인사법 개정안을 다음 달 5일부터 시행한다. 병사 징계 처분은 현행 ‘강등·영창·휴가제한 및 근신’에서 ‘강등·군기교육·감봉·견책’으로 변경된다. 영창제도는 1896년 고종이 내린 칙령인 ‘육군 징벌령’이 시초였는데 12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한 해 영창을 가는 병사는 1만 명 정도로 사단 병력 규모의 적지 않은 수가 군에서 징계를 받는다. 그동안 군은 전과자 양산을 막고 지휘권을 확립한다는 이유로 영창을 유지해 왔지만 영창 폐지로 군대 내 ‘원님 재판’ 논란은 막을 내리게 됐다. 규정을 어긴 병사는 제재를 받아야 하지만 반드시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합당한 처분이어야 당사자가 승복하고 조직도 결속할 수 있다.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
#군#영창#훈계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