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박정수]권력도 감사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 동아일보

대국민 사과할 만큼 신뢰 타격 입은 감사원
독립성 취약한 상태에서 바람 불기 전 누워
합의제 운영 내실화해 일부 위원 독단 막고
정권에 휘둘리지 않게 원장 임기 보장해야

박정수 이화여대 연구·대외부총장(행정학)
박정수 이화여대 연구·대외부총장(행정학)
권한대행이기는 하지만 감사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감사원은 9월부터 세 달여 동안 ‘운영쇄신 태스크포스(TF)’ 활동을 통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감사 등 정치감사 논란이 제기된 ‘7대 감사’ 과정을 점검했다. 감사원은 그 결과로 3일 “정치·표적 감사”라고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와 함께 인사권과 감찰 권한 남용에 대한 책임 규명과 특별조사국 폐지 등 제도 개선 방향도 제시했다.

이러한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감사원은 4대강 감사를 다섯 차례나 하는 등 정권에 따라 종전 감사 때의 지적과 배치되는 결과를 내놓곤 했다. 한국갤럽-시사IN 연례 조사에서 2025년 감사원에 대한 국민 신뢰 수준은 10점 만점에 4.08점으로, 국가기관 중 최하 수준으로 나타났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감사가 가능한지, 그리고 정권 따라 바뀌는 감사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를 과제로 남긴 것이다.

감사원은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을 업(業)으로 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 하지만 그 위상과 권한, 기능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 왔다. 감사원법 제2조 1항은 감사원의 지위에 대해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감사원장을 포함한 4년 임기 7명의 감사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생래적으로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 쉽다. 감사원장의 임기가 4년으로 보장돼 있으나 제대로 임기를 마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2020년 10월 법 개정을 통해 감사 결과를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하던 것을 감사 결과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에 관해 보고하는 것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대국민 사과에서 보듯 그 이후에도 감사원의 독립성 훼손 논란이 이어졌다. 이에 정치적 오명을 뒤집어쓴 감사원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불충분한 제도와 함께 ‘바람이 불기도 전에 알아서 눕는’ 감사원의 행태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제도와 운영에서의 보완을 통해 바닥에 떨어진 국정운영 ‘파수꾼(watchdog)’의 품격을 되살리고 더 이상 같은 사태가 반복되는 일을 막는 게 절실하다.

우선 감사위원회의 실질적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감사원은 원장을 포함한 7인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기관으로, 의사결정 체제를 내실화해 감사원장 1인의 독단적 결정을 견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감사계획과 주요 공익감사 청구 사항에 대해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의무화하고, 감사 결과 발표 및 공직감찰 사항도 감사위원회의 사전 의결을 거치도록 법에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감사원장뿐 아니라 감사위원 임명 시에도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 후보의 자질과 도덕성을 공개적으로 검증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감사 결과 및 주요 사항에 대한 국회 보고를 확대하고,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해 국회의 감시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감사원장의 임기 및 지위 보장 강화도 중요하다. 현 4년인 감사원장의 임기를 대통령 임기보다 길게 설정해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 경우 어느 정권이 원장을 임명하는가를 둘러싼 논란이 있겠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어느 정파에 유불리가 없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아울러 감사 대상 및 범위도 명확히 해야 한다. 정책 결정 및 정책 목적의 타당성 여부를 직무감찰 제외 사항으로 감사원법에 명확히 규정해 정책감사를 빙자한 정치감사 논란을 방지하고, 행정부의 적극행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 정책의 타당성·효과성·효율성 등 성과감사 기능을 강화하고 이를 위한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와 함께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다. 임명권자인 대통령, 감사원 구성원, 그리고 감사의 대상이 되는 모든 기관 구성원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제도를 보완해도 역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감사원 구성원은 헌법기관의 일원으로서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감사를 수행해야 하며, 합의제 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부고발자 보호 시스템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행정기관은 정치감사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소신 있게 행정을 펼치고, 부당한 감사에 대해서는 합법적 절차로 이의를 제기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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