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지난해 어느 날, 지리산을 병풍처럼 두른 경남 함양군 마천면의 한 펜션을 찾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아내의 본적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그렇게 장인어른이 태어난 장소로 향했다. 장모님은 자신의 남편이 자란 집을 우리가 왜 찾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차 안에서 들려오는 안내 음성에 따라 지방도로로 접어들었고, 이내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며 아내는 능숙한 솜씨로 급커브를 빠져나갔다.
문이 두 개뿐인 작은 차는 이 길에서 나름의 장점을 드러냈다. 세 분의 할머니가 입을 벌린 채 우리의 피아트 500을 쳐다봤다. 피스타치오 색에 동그란 외형을 가진 그 차가 할머니들 눈에는 거대한 사탕처럼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은행나무 그늘에 차를 세우고 햇볕을 받으며 걷기 시작했다. 널찍하지만 몹시 낡아 족히 100년은 되었을 듯한 농가를 지나 스마트폰 지도 앱의 핀이 찍힌 장소에 도착했다. 차고와 텃밭이 딸린, 최근에 지어진 평범한 주택 앞이었다. 옆집에서 튀어나온 큰 개 한 마리가 작은 동물 특유의 강렬한 분노를 담아 미친 듯이 짖어댔다. 아내는 즉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만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단호한 어조였다. 혹시 어떤 불길한 징조가 아내의 등골을 스치고 지나간 건 아닐까 생각했다.
개는 짖는 것을 멈추지 않고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가 아닌 걸까. 그곳을 떠나기 전, 별 의미는 없었지만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평범한 시골집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낡은 농가의 사진도 찍었다. 나무 툇마루에 농기구가 내걸려 있고, 닫힌 창문에는 무더위를 막아주는 한지가 군데군데 구멍이 난 채 발려 있는 집이었다.
장인어른은 약 80년 전 아마 이와 아주 비슷한 곳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이곳이 장인어른의 집일 거야.’ 나는 속으로 뇌까리며 첫 사진을 지웠다.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차로 돌아왔다. 시작과 끝, 요람과 무덤. 단 1분이었지만 그곳에서 마지막 작별의 순간을 맞이한 것은 나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도자기로 만든 유골함이 차가운 함으로 들어가고, 묘지의 직원이 그것을 영원히 봉인할 때까지 장인의 유골을 지키는 역할을 내가 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몇 년 전 장례식 아침, 아들이 없는 집안의 맏사위로서 나는 상주 역할을 맡았다. 조문객 한 명 한 명 앞에서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절을 하며 3일을 보냈다. 장례를 마친 뒤 아내가 챙긴 사진들 속에는 야구 동호회의 주장이자 온갖 장비를 갖춘 등산가였고, 두 딸에게 몹시 다정했던 작고 단단한 체구의 장인이 있었다.
작은 차를 타고 펜션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2013년 어느 날이 떠올랐다. 부산에서 장인, 장모와 6개월을 지내다 서울로 이사하던 날이었다. 그때 장인어른이 내게 말했다. “다음에는 양주 한 병 챙겨 오는 걸 잊지 말게.”
차를 산 지 일주일 만에 작은 사고가 났다. 내 잘못이었다. 운전은 아내가 하고 있었는데, 나는 아내가 역주행했다고 착각했다. 밤이었고 폭설이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엉겁결에 조심하라고 버럭 소리쳤다. 당황한 아내는 핸들을 꺾었고 우리는 연석과 가로등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심각한 사고는 아니었다. 속도도 느렸고 주변에 다른 차나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충돌 1초 전,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우리의 시선, 곧바로 이어진 둔탁한 충돌음, 아스팔트 위에 흩뿌려진 헤드라이트의 파편들,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체의 철판, 충격과 망연자실함까지 이 모든 것들이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됐다. 충돌하는 자동차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물질성. 1990년대에 당한 아주 심각한 교통사고로 돌아가실 때까지 수십 년을 병석에서 보낸 장인어른이 떠올랐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자동차용품을 파는 매점을 구경했다. 갈기를 휘날리는 말 스티커, 불꽃을 내뿜는 해골 스티커, 각종 거치대 등 대부분 차를 장식하는 잡동사니들이었다. 우리는 다시 차들 속으로 합류했다. 도착 예정 시간보다 늦어졌고, 아내는 어둠 속에서 속도를 냈다. 그녀의 혀끝에 맴도는 아드레날린과 엔진의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탁 트인 차창을 통해 이 작은 차가 고속도로의 차선들을 삼켜버리는 것을 보았다. 내 머릿속에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세상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자동차의 앞 유리는 마치 영화관의 스크린과 같았다. 그 여행에서 비로소 나는 장인어른의 지나간 삶에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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