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석병훈]연봉 높아도 ‘벼락거지’… 한국의 ‘헨리’ 울리는 자산 격차

  • 동아일보

서울 중심 집값 상승에 순자산 격차 커져
고소득-저자산 청년층 대출 규제 직격탄
자산 격차 줄일 사다리 정부가 걷어찬 격
세대 갈등 커질라 ‘헨리’ 부자될 길 열어야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
최근 우리나라의 순자산 불평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순자산 간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7년 0.584에서 2025년 0.625로 뛰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소득의 불평등도 보여주는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는 오히려 개선됐다. 즉, 소득만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자산의 격차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서울 중심의 주택 가격 상승으로 보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과 지방 아파트의 실거래가 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다. 2017년 11월의 서울과 지방 아파트 실거래가 비율을 1로 볼 때, 2025년 7월에는 이 비율이 1.75배까지 치솟았다. 부동산이 전체 자산의 71.1%를 차지하기 때문에 서울 중심의 주택 가격 상승은 주택 소유자와 무주택자 간, 그리고 서울과 지방 주택 소유자 간 순자산 격차를 키운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정부도 주택 가격 안정화를 목표로 6·27 대책과 10·15 대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줄이고, 갭투자를 막는 등 주택 구매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 가격은 올해에만 7.86% 상승해 한국은행의 물가상승률 전망치 2.1%의 4배에 육박한다.

이러한 서울 중심의 부동산 가격 급등은 순자산 불평등도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대기업 취업 등으로 고소득이지만 아직 자산을 축적하지 못한 청년층, 이른바 ‘헨리(HENRY·High Earner, Not Rich Yet)’ 계층으로부터 자산가들에게로 부를 이전시키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정부는 수도권 핵심지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상한을 낮추는 등 대출을 규제하고 있다. 동시에 저소득층에는 디딤돌 대출과 같은 저리의 정책자금 대출을 더 높은 LTV 상한까지 제공해 서민 주거 안정을 꾀하고 있다. 그 결과 고소득·저자산 청년으로 대표되는 헨리는 높은 소득으로 디딤돌 대출 혜택은 받지 못하면서 대출 규제의 직격탄을 맞아 수도권 핵심지의 주택을 구매할 기회를 잃게 됐다. 필자가 최근 한국은행과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소득분포 하위 50%인 저소득층에는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0.55%포인트 감면하는 동시에 LTV 상한을 기존 70%로 적용하고, 상위 50%인 고소득층에는 LTV 상한을 40%로 낮출 경우, 2017년 대비 자가보유율이 9.93% 급락하고 주택자산 지니계수가 16.37% 상승해 주택자산 불평등도가 악화된다.

현 정책 기조가 지속된다면, 조만간 고소득·저자산 청년들은 ‘벼락거지’가 되는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 서울의 신규 주택 공급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고, 기존 부동산 시장은 현금 부자와 같은 자산가들만 접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서울의 주택 건설 인허가 실적은 10년 평균 대비 49.5%에 불과하다. 인허가부터 입주까지 3∼5년의 시차가 있음을 감안하면, 2027년부터 서울 신규 주택 입주 물량은 장기 평균 대비 절반이 될 것이다. 수요는 탄탄하지만 공급이 급감해 서울 주택 가격은 당분간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고소득·저자산 청년들은 이런 상황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

본인의 노력으로 고소득 직업을 얻은 청년들이 자산가로 성장할 사다리가 끊어지면 한국 경제에도 큰 타격이다. 미래 세대들이 자기 계발에 투자하고,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수 없다는 패배감을 갖게 돼 결국 자본주의 체제인 한국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할 길이 차단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황이 세대 간 갈등을 격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현 부담-수혜 체계하에서는 고소득자들에게 소득세와 사회보장비 부담이 집중돼 있다. 여기에 급격한 고령화가 더해지면 고소득·저자산 청년들만 이미 자산가가 된 중·장년층을 위해 세금과 사회보장비를 부담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최근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발생하고 있는 극단적인 세대 갈등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수도권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고소득·저자산 청년들이 자산가로 성장할 길을 열어주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들은 높은 소득으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할 능력이 있으므로 이들에게는 LTV 상한을 높이는 등 대출 규제를 완화해서 주택 구매의 길을 터줘야 한다. 또한 택지가 부족한 수도권의 현실을 감안해 재건축과 재개발 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향후 수도권 핵심지에 신규 주택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

#순자산 불평등#지니계수#헨리 계층#주택 가격 상승#부동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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