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적 구성부터 기울어진 중앙선관위의 기울어진 판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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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제 서울 동작을 미래통합당 나경원 후보 측이 사용한 ‘민생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란 투표 독려 피켓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불허했다. 투표 참여 권유 시 정당 명칭이나 후보자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면 안 되는데 ‘민생파탄’은 현 정권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반면 같은 지역구의 여권 지지자들이 사용한 ‘투표로 70년 적폐청산’ ‘투표로 100년 친일 청산’ 현수막은 허용했다.

선관위가 ‘민생파탄’을 불허한 이유도 어이없지만, ‘적폐 청산’과 ‘친일 청산’은 된다는 이유는 더 황당하다. 70년, 100년은 보편적으로 긴 기간이라 특정 정당을 유추할 수 없다는 설명인데, 현 집권여당이 적폐·친일 청산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것을 선관위만 모르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야당 반발이 계속되자 선관위는 어제서야 여당 지지자들의 현수막도 불허하겠다고 뒤늦게 입장을 번복했다.

선관위는 엄격한 중립성이 요구되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민주화 이래 치러진 총선 가운데 이번만큼 선관위가 중립성 논란에 오른 적도 드물다. 선관위는 올 초 ‘비례자유한국당’(현 미래한국당) 창당준비위가 결성 신고를 할 때는 당명을 문제 삼지 않다가, 최종 단계인 전체 회의에서 유사 당명이 있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지난달에는 자매 비례정당 선거운동과 관련해 민주당 이 대표는 되고,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안 된다고 해 논란을 불렀다.

선관위의 편파성 우려는 지난해 1월 문재인 후보 캠프 출신으로 대선백서에 이름이 오른 조해주 씨가 상임위원으로 임명되면서 일찌감치 제기됐다. 현재 중앙선관위원은 정원 9석 중 7명뿐인데, 문 대통령 추천 3명, 김명수 대법원장 추천 2명 등 5명이 범여권 인사들이다. 이런 불균형은 사실상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이 여야 합의 몫으로 추천한 김대년 전 선관위 사무총장을 제대로 된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반대해 인사 청문회를 무산시켰다.

가뜩이나 이번 선거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 시행돼 갖가지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는 공정성이 생명인데 심판인 선관위가 편파 판정 논란에 휘말리는 것은 자칫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를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준연동형 비례대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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