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창규 KT 회장(사진)은 26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총회(다보스포럼)에 참가한 뒤 기자들과 만나 ‘감염병 확산방지 플랫폼(GEPP)’을 제안한 배경을 이같이 설명하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황 회장의 다보스포럼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황 회장은 WEF 보건그룹 패널토의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70억 인류가 실질적으로 연결되는 플랫폼을 만들자”며 GEPP를 제안했고, 이어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 워킹그룹을 출범시켰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하버드대, 아프리카질병통제센터 등이 함께하는 워킹그룹은 KT가 의장 역할을 맡아 GEPP 프로젝트를 1년 동안 연구한 뒤 내년 다보스포럼에서 그 연구 결과를 보고하게 된다.
▼ 황창규 “빅데이터 기술로 70억 인류 한데 묶는 첫 프로젝트” ▼
에볼라나 지카바이러스 등 감염병은 세계의 고민거리. WEF도 예산을 들여 지난해 초 ‘감염 대비 체계 강화(ERA)’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은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황 회장으로부터 GEPP 프로젝트 관련 설명을 듣고 “엄청난 이노베이션(혁신)이다. 당장 다음 다보스포럼에 참가해 아이디어를 공유해 달라”고 요청했고, KT와 파트너십도 체결했다. 이어 바로 다음 달 황 회장을 ERA 집행위원으로 선출했다.
황 회장이 다보스포럼 참가로 이룬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WHO와 세계은행의 동참을 끌어낸 것. WHO와 세계은행은 황 회장과 함께 ERA 집행위원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다. 전 세계 감염병을 총괄 관리하는 WHO와 개발도상국에 돈을 지원하는 세계은행의 참가로 실질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실행시킬 수 있는 추진력이 생기게 됐다. 황 회장은 2016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각국 정부와 통신사에 설명해 케냐, 아랍에미리트, 캄보디아 등 9개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전 세계로 퍼뜨리기에는 속도가 더딘 편이었다. 그래서 황 회장은 WHO, 세계은행, 유엔 등 국제기구를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유엔에는 황 회장의 제안으로 감염병 확산금지 워킹그룹이 신설돼 이 프로젝트가 논의되고 있다.
황 회장은 기자들에게 “다보스포럼 섹션에서 참가자들에게 2015년 메르스 확산 방지 사례와 지난해 한국에 14명(콜레라 9명, 지카바이러스 5명)의 감염자가 들어왔지만 이 플랫폼을 통해 확산 위험을 100% 막았다는 소식을 전하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이번 다보스포럼 기간 중 개발도상국에 백신을 지원해주는 민관 협력 기구 가비(GAVI) 후원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의 조찬에 초대받기도 했다. 게이츠 창업자 역시 황 회장의 GEPP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가비는 KT가 주도하는 WEF 워킹그룹 참여도 적극 검토 중이다.
황 회장은 “조찬 자리에 참가한 아프리카 각국 장관들은 게이츠 창업자에게 백신을 더 지원해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며 “지금까지 감염병 대책이 백신 치료에만 집중돼 있었다면 GEPP 프로젝트는 예방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효과도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공신력이 높은 국제기구의 참여는 GEPP 프로젝트가 휴대전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개인정보 유출이나 프라이버시 침해가 우려된다는 일각의 비판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황 회장은 “평상시 이 시스템은 빈껍데기일 뿐이다. 사고가 생기면 한 사람만 들어가서 (이동 데이터를) 보면 된다”며 “원천적으로 프라이버시는 블록체인 기술로 보호하고 휴대전화 식별도 로밍 데이터가 아니라 디바이스 고유번호를 알아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 유출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GEPP 플랫폼을 설치하는 데 돈도 별로 들지 않고 개념도 아주 단순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인식만 확산된다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며 “내년 정도면 이 프로젝트 도입 필요성에 대한 전 세계 컨센서스가 어느 정도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이어 “모바일 세계에서는 전 세계를 연결하는 정보통신기술(ICT) 플랫폼을 통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창조적인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며 “KT는 감염병 이외에 다른 분야 프로젝트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보스=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