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正과세로 가는길]업종 표준소득률 오히려 탈세 부추겨

  • 입력 1999년 7월 8일 18시 25분


‘표준소득률이 없어지면 세무행정이 마비된다.’

세무공무원들 사이에서 흔히 나도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현행 세정은 표준소득률(표소율) 제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종합소득세 신고대상자 대부분에 대해 소득세를 매기는 기준이 바로 표소율이기 때문이다.

표소율은 ‘자영자들이 종합소득 신고를 할 때 최소한 이 정도는 신고해야 한다’며 세무당국이 업종별로 미리 정해놓은 소득률 추정치. 업종별로 매출액에서 필요경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므로 국세청은 999개 업종별로 표소율을 지정해 놓고 무기장(無記帳)사업자의 경우 매출액에 표소율을 곱해 소득액을 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출액이 1억원인 자영자가 속해 있는 업종의 표소율이 20%라면 1억원에 0.2를 곱한 2000만원이 자영사업자의 표준소득이 된다. 표소율제도는 당초 자영자들의 불성실 신고를 막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조세전문가들은 표소율 제도가 바로 탈세를 부추기는 주범(主犯)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설령 소득이 표소율보다 높더라도 이에 맞춰 사업장부를 작성하고 이에 따라 합법적인 탈세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표소율 제도가 조세정의를 실현하는데 끼친 폐해는 적지 않다.

우선 대부분 업종의 표소율이 실제소득률보다 상당히 낮게 지정돼 소득누락과 이에 따른 탈세를 조장한다는 점. 이는 세무당국이 자영자들의 조세저항을 막기 위해 표소율을 일부러 낮게 책정해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영자들은 실제소득을 속이고 낮게 책정된 표소율에 맞춰 신고하기 마련. 예를 들어 A사업자의 실제매출액이 연 10억원, 실제 소득액이 7억원이고 A사업자가 속한 업종의 표소율이 40%라면 A사업자는 표소율에 맞춰 4억원 가량만 신고하고 3억원의 소득을 누락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자영자의 무기장 관행을 유도해 부가세 등의 추가 탈세를 가능케하고 조세행정의 기본 원칙인 ‘근거과세’를 허무는 점도 표소율 제도가 가져온 폐해다. 장부에 근거해 소득을 신고하기보다는 표소율에 맞춰 신고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장부작성 기피로 이어지는 것이다. 종합소득세 신고자 127만5000여명 중 장부에 근거해 신고하는 인원이 39.6%에 불과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한 업종 내에서 세부담의 역진성을 초래하는 것도 표소율 제도의 문제점. 같은 업종 내에서도 영업이 잘 될수록 매출액 중 필요경비 비중이 낮아지는 반면 영업이 안되면 이 비중이 높아진다. 그러나 표소율은 매출액의 다과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업종내의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현상을 초래하는 것이다.

표소율이 실제 소득률보다 상당히 낮게 책정되어 있는 현실은 국가 세입 중 직접세인 소득세의 비중을 낮추고 필연적으로 간접세의 비중을 높이는 현상을 낳게 된다.

그러면 표소율 제도의 개선방향은 뭘까. 조세전문가들은 먼저 표소율에 따른 과세보다는 자영자들이 스스로 수입과 경비를 모두 장부에 기록, 소득금액을 산정한 뒤 세율에 따라 세금을 내는 자진신고납세제도가 확립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확한 실태조사를 거쳐 표소율을 높이고 이를 비공개로 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영자들이 표소율에 맞춰 소득을 축소신고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서다. 또 자영자가 자신의 실제소득을 입증하는 책임을 지게 해 납세자들이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장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세청도 올해부터 장부에 의한 신고를 확대하기 위해 가계부처럼 수입과 지출만 적으면 되는 간편장부제도를 도입, 이 제도 이용자에게 소득세 산출세액의 10%를 세액공제해주고 있다.

연구자와 연구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기장에 따른 자진신고납세제도가 확립될 경우 소득세수 증대효과는 대략 5000억∼1조5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과세근거 양성화로 발생하는 부가가치세 등의 세수증대 효과까지 따지면 4조원 가량의 세수가 추가로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조세전문가들은 이같이 늘어난 5조원 가량의 세수를 간접세율을 낮추는 데 쓸 경우 간접세율이 평균 10%가량 낮아져 모든 계층의 세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일본 경우? 청색신고제로 記帳의무화▼

95년부터 자영자의 종합소득세에 대해서 자진신고납세제도를 도입한 우리나라의 경우 ‘원칙상’으론 납세자가 행한 신고에 따라 1차 세액을 확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자영자들이 표준소득률에 따라 소득을 신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과 미국, 독일 등 대부분의 ‘과세선진국’에서 표준소득률은 납세자의 성실신고를 판단하는 참고항목으로만 이용된다. 또 표소율을 공개하지 않고 세무당국에서 내부자료로만 이용하기 때문에 납세자들이 이를 근거로 ‘합법적인’ 탈세를 하기란 쉽지 않다.

47년 이미 신고납세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50년경 신고납세제도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청색신고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법인이나 개인이 미리 세무서장의 승인을 얻어 ‘청색신고자’지정을 받은 뒤 기장(記帳)을 계속하고 보관할 의무를 지는 대신 다른 납세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세제상의 혜택을 얻는 제도. 일본은 이 제도가 납세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자 84년 세법을 개정해 청색신고자가 아닌 일반 신고자(백색)에 대해서도 간단한 기장을 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기장에 의한 신고납세제도를 확대했다.

94년 현재 일본은 개인납세자의 절반이 넘는 449만명과 전체법인의 91.9%인 253만여개의 납세자가 청색신고자로 등록을 마쳤다. 일본의 ‘성공’은 청색신고회 등 민간단체의 협력과 세무당국의 혹독한 세무조사 등이 뒤따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당장의 세수확보보다는 ‘성실과세’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지향했다는 점이 작용했다. 우리나라도 66년 청색신고제도와 유사한 ‘녹색신고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납세자와 세무당국 양쪽 모두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납세자의 경우 녹색신고자로 지정된다 해도 별 혜택이 없는데다 번거롭기만 하다는 반응이었으며 세무당국에서도 일만 늘어났다는 반응을 얻었기 때문. 결국 이 제도는 95년 자진신고납부제 시행과 함께 폐지돼 버렸다.

세무당국은 올초 소규모 사업자에 대해 ‘간편장부제도’를 도입, 세액공제를 해 주는 등 성실신고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조세전문가들은 이 제도의 성공에 대해 회의적이다. 세무당국이 여전히 기장을 근거로 한 자진신고납부보다는 표준소득률에 맞춰 신고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

[동아일보―참여연대 공동취재팀]

▽동아일보〓정동우차장, 정성희복지팀장, 하종대사건기획팀장, 정용관, 홍성철, 김상훈, 권재현, 선대인(이상 사회부), 신치영기자(경제부).

▽참여연대〓김기식정책실장, 윤종훈전문가팀장(회계사), 하승수 박용대변호사, 최영태 이재호회계사 등 관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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