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銀 해외매각]세금 2-5조 추가투입 불가피

  • 입력 1998년 12월 31일 18시 06분


코멘트
엄청난 국민부담 위에서 제일은행 매각이 이루어졌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31일 미국계 뉴브리지 컨소시엄이 제일은행의 지분 51%를 인수하는 등의 조건을 막판 협상 끝에 합의했다. 최종 순간까지 인수 경쟁을 벌였던 영국계 홍콩상하이은행(HSBC)도 지분을 51%까지 낮췄으나 향후 1년 이내에 정부지분의 25%를 추가 인수하겠다는 콜옵션을 걸었다가 탈락하고 말았다.

정부가 이처럼 지분에 집착한 것은 앞으로 제일은행의 주가가 크게 오를 경우 정부지분을 높은 값에 되팔아 재정부담을 최대한 보전하기 위한 것.

막판 협상에서 또 앞으로 제일은행에서 발생하는 부실채권에 대해 우리 정부가 ‘인수후 1년은 100%, 2년째는 일정 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기로 합의했다. 뉴브리지 컨소시엄측은 당초 2년간의 부실채권 모두를 책임져달라고 요구했었다.

▽엄청난 재정부담〓현재 제일은행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1조5천억원이 들어가 있는 상태. 그러나 앞으로 생기는 부실 중 상당부분을 정부가 떠안아주기로 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부담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2조∼5조원의 재정자금이 추가로 투입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금융계는 추산하고 있다.

뉴브리지 컨소시엄이 자기 돈이 들지 않는 1년간 제일은행의 부실을 추가로 찾아내는 데 주력할 것이므로 정부의 부담은 크게 늘어날 수도 있다. 또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사들여 소각하는 경우 1천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된다. 이만한 거금을 들여 사실상 거저 주는 형태로 매각하고도 제일은행이 국제적 수준의 금융기관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뭣 하러 외국에 팔았느냐’는 비난이 일 전망이다.

▽발가벗는 재벌그룹〓제일은행은 국내 재벌그룹중 대우와 SK그룹의 주채권은행.

최근 재벌그룹과 은행이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으면서 웬만한 기업의 재무정보는 은행에서 보유하고 있다. 이들 그룹의 부채구조 현금흐름 수익구조 등 중요한 재무정보를 대주주인 외국 금융기관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더구나 뉴브리지 컨소시엄의 경우 금융기관을 장기적으로 영업하는 것보다는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높인 뒤에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투자은행이라는 점에서 기업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설득력을 갖는다.

대우그룹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재무정보를 대주주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걱정했다. 새로운 대주주 입장에서는 재벌그룹 뿐만 아니라 은행과 거래하는 웬만한 중견기업의 사례를 통해 한국 산업계와 금융관행 전반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또 한번의 대량해고〓현재 제일은행 전국 점포는 3백39개, 인원은 4천8백58명이다. 인수자측에서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점포를 1백50개로 슬림화한다는 구상. 이렇게 되면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하다. 최소 3분의 1(약 1천6백명), 많으면 절반(약 2천4백명)이 직장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

▽제일은행측 반응〓유시열(柳時烈)제일은행장은 인수자가 결정된 뒤 사내 방송을 통해 “외국자본 유치를 통한 민영화야말로 제일은행이 재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달라”며 “긴장감을 늦추지말고 영업기반의 확충과 선진 금융시스템 정비에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제일은행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누가 인수자가 되더라도 정부는 제일은행 직원의 100% 고용승계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은행 매각 급진전될 듯〓제일은행의 인수기관이 확정됨으로써 서울은행의 해외매각도 급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약속한 1월말까지 서울은행 매각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정부측 시각.

외국금융기관들은 두 은행의 매각을 대외신인도를 높일 수 있는 상징적인 조치로 한 무더기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서울은행은 제일은행보다 대기업여신이 적고 인력(50% 감축) 및 점포(70여개 폐쇄) 정리도 잘 돼 있어 HSBC를 비롯해 3, 4개 외국금융기관이 입질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용재·이철용기자〉yj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