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는 아무리 긁어모아도 아직 모자라고 금융시장은 동맥도 실핏줄도 제대로 흐르지 않아 나라 경제가 벼랑 끝에 선 지금, 경제의 몸체라 할 실물경제인들 성할 리 없다.
그러나 그 상황은 너무나 심각하다. 제조업의 생산과 수출, 그리고 국내 유통 등 모든 실물부문이 위기의 도를 더해가고 있다. 조업을 줄여도 매출은 격감하고 재고는 늘기만 해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자금난은 몇시간 뒤를 안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같은 처지에 놓인 경제계는 시장흐름을 정확히 꿰뚫는 정부의 강도높은 대책과 정치권의 현명한 처신, 기업과 근로자의 허리띠 졸라매기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실물부문이 붕괴위험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은행권이 이달 말로 예정된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을 지키기 위해 기업대출은 물론 수신마저 기피하는 대대적인 금융긴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말한다.
은행들이 무역신용장 개설과 종합금융사 등에 초단기자금 제공을 거부하면서 경제의 사활이 걸린 수출입은 물론 제조업체 설비가동률 역시 70%대로 낮아지고 유통부문도 극심한 내수침체에 시달리는 등 실물부문이 총체적으로 얼어붙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기업 자금담당자들은 금융위기가 실물부문으로 파급되는 것을 당장 차단하기 위해선 한국은행의 종합금융사 증권 투신사 등 제2금융권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특히 신용이 바닥에 떨어져 자생력을 상실한 부실 금융기관을 조속히 정리, 금융시장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외국정부 및 투자가들은 우리정부의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재정지원 방침을 두고 우리측의 국제통화기금(IMF)합의사항 이행노력에까지 의구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진다. S그룹 관계자는 『예금자보호만 제대로 된다면 일부 부실금융기관 폐쇄를 못할 이유가 없다』며 『자구시간을 주는 것도 좋지만 실물경제가 다 무너지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정부가 금융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각 은행 기업 실무자들로 비상자문단(가칭)을 구성, 조언을 구함으로써 정책효과를 극대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기업도 자금난만 탓하기 전에 구조조정을 강도높게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우석(崔禹錫)소장은 『자금력이 있는 주요 그룹간 자동차 유화 조선 등 중복투자가 심각한 분야에서 사업부문 상호교환이나 우호적 인수합병을 통해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 때』라며 그룹 이기주의를 과감히 떨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IMF재협상」발언이 본래 의도야 어떻든 외국정부 및 투자가들의 불신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지적, 국가이익을 우선시하는 신중한 처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영이·박래정·오윤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