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생이 행복한 건 ‘혼자’가 아닌 ‘함께’이기 때문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9-12 03:00수정 2020-09-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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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산/데이비드 브룩스 지음·이경식 옮김/600쪽·2만2000원·부키
금전과 권력, 명예라는 인생의 첫 번째 산 뒤에는 더 큰 자아의 실현이라는 두 번째 산이 기다린다고 저자 브룩스는 말한다. 그것은 배려와 헌신, 사랑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해주는 산이다. 사진 출처 Pixabay
“이 산이 아닌가봐”가 국경을 넘는 지휘관의 외침만은 아니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 권력과 재물을 쥔 솔로몬의 탄식만은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시사 칼럼니스트로 친숙한 저자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목표 리셋’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삶은 두 개의 산을 보여주지만 두 번째 산이 더 위대하고 오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은 ‘개인적 성공’이다. 이 단계에서 사람은 명예와 영향력, 큰 집에 탐닉한다. 어떤 사람은 문제없이 꼭대기에 오르지만 더 많은 사람은 원하던 곳에 오르지 못한다. 어느 쪽이든 어느 순간엔 고개가 갸웃해진다. ‘이것이 나의 참모습일까? 더 심오한 삶의 목적이 있는 것 아닐까?’

이럴 때 어떤 사람은 자기를 넘어 타인을 보살피고자 하는 열망을 깨닫는다. 헌신하는 삶을 만나는 것이다. 헌신은 정체성과 목적의식, 더 높은 차원의 자유, 도덕적 인격을 만들어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과도한 이상론(理想論)일까. 우리 주위에는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버리고 헌신하는 사람이 왜 그다지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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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오늘날의 시대정신과도 많은 부분이 연관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현 시대를 ‘개인 과잉의 시대’로 진단한다. 20세기 중반 서구 사회는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겪었다. 개인보다 공동체가 중요했고,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가 종일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마을을 돌아다니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 시대도 한계가 뚜렷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 획일주의가 만연했다.

이에 대한 반발이 1960년대에 68혁명이라는 문화변혁을 불러왔다. 권위를 거부하거나 자신을 있는 힘껏 표현하는 것이 그 시대의 미덕이었다. 이 개인주의적 문화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깨뜨렸고, 개인의 창의를 격려해 오늘날 정보화 세계의 바탕을 마련했다. 그러나 자기에 대한 몰두가 사회 구성원 간의 분리와 고립을 가져왔으며 ‘더 큰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제 ‘두 번째 산’, 헌신이라는 개인의 내면적 요구를 다시 돌아볼 때가 온 것이다.

나를 버리고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라는 얘기일까.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의 폐해를 겪은 현대인에게는 경계심도 드는 얘기다. 저자는 ‘부족주의’와 ‘관계주의’를 구분함으로써 공동체주의에 깃든 독을 빼고자 한다. 부족주의는 증오와 ‘적’의 존재를 토대로 한다. 그것은 당파성으로 공허를 채우는, ‘자아도취자를 위한 공동체주의’다. 이와 달리 관계주의는 증오와 적이 필요 없다. 그것은 타인을 돌보는 능력을 갖고 헌신하는 것이며, 사랑이라는 형태로 찾아오는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다.

책을 덮기 전 19세기 독일 이상주의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떠올랐다. 괴테 ‘파우스트’의 주인공은 청춘의 회복이라는 개인의 욕망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 그러나 그가 최고의 행복에 싸여 “멈추어라, 순간이여”를 외친 것은 육욕(肉慾)을 충족한 순간도, 재물과 권력을 손에 넣은 순간도 아니었다. 자신이 설계한 행복한 공동체가 수립되는 것을 보는 순간 파우스트는 행복의 정점에 도달한다. 베토벤은 ‘합창환상곡’에서 행복한 개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16년 뒤 ‘합창교향곡’에서 한데 손잡은 인류의 모습을 그린 뒤 만족했다.

오늘의 미국 사회에 대한 인식이 책의 바탕을 이루지만, 한국 사회가 거쳐온 시대의식과 비교하며 읽으면 한층 생생하게 다가온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두 번째 산#데이비드 브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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