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신은 관대하다”…‘차이의 존중’

  • 입력 2007년 7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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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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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존중/조너선 색스 지음·임재서 옮김/374쪽·1만5000원·말글빛냄

“종교는 해답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 문제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영연방 최고 랍비(유대교 성직자)로 꼽히는 저자의 이런 통찰은 최근 종교 갈등을 부추긴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발언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갈이다.

2003년 영국의 타임스와 인디펜던트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 책을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이후 쏟아지는 수많은 문화다원주의론적 주장(대화의 중요성을 강조)으로 보면 오산이다. 저자는 문명충돌론 중 가장 민감한 주제인 종교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면서도 감탄할 만한 솜씨로 그 문제의 본질과 해법을 함께 제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21세기 종교의 번성 이유를 합리주의와 세속화를 선택한 계몽주의의 실패에서 찾는다. 이성의 힘만으로는 도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교환(거래)을 통해서 차이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임을 알려준 시장을 옹호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은 부의 창출은 쉽게 해도 부의 분배, 곧 정의의 실현에는 서툴다. 정치와 경제논리로 이를 구현하려는 계몽의 기획은 실패했다. 이에 좌절한 개인이 그 해답을 다시 종교에서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21세기 종교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종교가 ‘문명 충돌’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20세기가 이데올로기 정치가 압도한 시대라면 21세기는 정체성 정치의 시대다. 정체성의 정치는 ‘우리’를 만들기 위해 우리와 다른 ‘그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종교만큼 이런 정체성 문제에 손쉬운 자양분을 제공하는 온상이 없다는 것이 저자의 비판이다.

“종교는 불이다. 따뜻하게도 해주지만 태워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불꽃의 관리자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은 동일한 유일신 신앙에서 출발했다. 저자는 그중 가장 폐쇄적이라 할 유대교의 성직자다. 그런 그가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대화를 통해 ‘신의 유일성은 다양하게 숭배됨’을 깨닫게 됐다고 토로한다. 더 나아가 각자의 종교만이 유일한 실체이고 진리이자 생명이라는 ‘플라톤의 유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 실천으로 자선과 정의의 의미를 함께 가진 ‘체다카’ 같은 유대교 교리에서 공존의 지혜를 비단실처럼 뽑아내는 저자의 통찰력은 문명 충돌을 논한 수많은 석학을 뛰어넘는 은총의 힘을 보여 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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