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정신질환 대물림 막아야” 월드비전, 취약가정 자녀 돕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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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재활시설 등과 협약 3억 지원

월드비전은 정신건강이 취약한 부모를 둔 자녀를 위해 내년 3억 원을 지원한다. 14일 서울 영등포구 월드비전에서 열린 협약식에 
참석한 이현희 영등포 아이존 시설장과 박미옥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장,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월드비전 제공
월드비전은 정신건강이 취약한 부모를 둔 자녀를 위해 내년 3억 원을 지원한다. 14일 서울 영등포구 월드비전에서 열린 협약식에 참석한 이현희 영등포 아이존 시설장과 박미옥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장,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월드비전 제공
‘아버지는 어두운 그림자 같았어요.’ ‘나는 그 모든 폭력을 야간 공연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가족이 무너질 때까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지난해 출간된 책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수잔 L . 나티엘) 속 소제목들이다. 책은 양극성 장애(조울증)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 12명을 인터뷰했다. 이 아이들은 부모가 앓는 병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에게 사회의 더 많은 지지와 개입이 필요하다고 책은 주장한다.

○정신건강 취약가정 자녀 360명 지원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이 내년부터 시작하는 ‘정신건강문제 취약가정 자녀 지원사업’도 이 책과 같은 취지다. 부모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자녀와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지원시설 ‘아이존’과 협약을 맺고 먼저 3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앞서 월드비전은 2017년 사각지대 아동 및 청소년 지원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7∼9월 현장 조사를 거쳐 정신건강 취약 가정을 지원 1순위로 정했다. 김순이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장은 “국내에는 정신건강 취약 가정을 위한 법적, 제도적 지원이 거의 없다”며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 속에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보호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사업은 두 가지로 이뤄진다. 서울시내 아이존 8곳에서 각각 보호자 20명, 아동 20명 등 320명을 추천받아 ‘가족관계 증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동에겐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부모에겐 양육 자신감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다.

월드비전은 각각의 아이존에 1000만 원을 지원한다. 이현희 영등포 아이존 시설장은 “아동이 불안감, 우울감을 겪지 않도록 부모 역할 교육과 상담을 비롯한 전문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업이나 생계의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일종의 장학금도 지원한다.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산하기관과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서 100명씩을 추천 받아 모두 200명에게 ‘꿈 지원금’을 제공한다. 1인당 연간 150만 원을 받게 된다. 김 본부장은 “국내 모든 정신건강 취약 가정 자녀에 대한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부모 정신질환, 자녀 대물림 막아야”
최정원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 장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장애가 있는 부모를 둔 자녀의 정신질환 유병률은 세계적으로 15∼23%다. 특히 부모가 중증정신장애가 있을 때 자녀의 약 50%는 정신장애를, 32%는 중증정신장애를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에서는 1970년대부터 정신건강 취약 가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미국은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270만 명의 중증정신장애 환자가 1280만 명의 18세 이하 자녀와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호주는 엄마나 아빠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 비율이 21∼23%(2005년)로 조사됐다. 캐나다는 아동의 15.6%(2008년)가 정신질환이 있는 부모와 함께 산다는 통계도 있다.

부모 정신질환이 자녀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나라들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호주는 1999년 정부 지원으로 정신질환 환자의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 ‘COPMI’를 만들었다. 캐나다 정신장애인가족협회는 아동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부모 질환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 자료를 만들어 자녀의 정신적 혼란을 최소화한다.

국내에선 이런 지원 사업이 드물다. 2000년대 중반 정신건강 관련 기관과 기업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으로 멘토링 사업 등을 진행했지만 예산과 인력의 한계로 대부분 중단됐다. 정신건강 취약 가정 아이들이 사실상 방치돼 있다는 의미다. 2017년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제출된 논문에 따르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된 부모의 자녀 중 25%가 정신건강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데 이번 사업의 의미가 있다”며 “정신건강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제도적 지원 장치의 마련이 함께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월드비전#정신질환 대물림#취약가정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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