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의 메디컬리포트]콩팥병 지원, 대만은 총통 나서는데 한국은 아직 시범사업

  • 동아일보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아시아태평양 신장학회(APCN) 개회식에 직접 참석해 만성 콩팥병 관리와 복막투석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아시아태평양 신장학회(APCN) 개회식에 직접 참석해 만성 콩팥병 관리와 복막투석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달 5∼7일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신장학회(APCN) 현장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라이칭더(賴淸德) 대만 총통이 개회식에 직접 참석해 “만성 콩팥병은 이제 세계 공중보건의 핵심 과제”라며 “병원 중심의 치료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고 환자들이 가정에서 안전하게 투석을 받을 수 있도록(재택 투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최고지도자가 특정 질환 학술대회에 나타나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모습은 신장내과 의사(전문의) 출신인 그의 이력을 고려해도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한국에서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재택 복막투석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 오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에서 열린 APCN에서 연사로 참석했고 올해 6월 대한신장학회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공동 개최한 심포지엄인 ‘재택 복막투석 활성화 정책 방안’에선 서울대 의대 교수 자격으로 토론자로 나왔다.

정 장관은 “만성 콩팥병은 질병 부담이 점점 증가하는 질환이다. 복막투석 환자에게 예후가 좋고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두 가지 이득과 정부 입장에서도 의료비 절감이 있다”며 “그런데 복막투석의 수가가 없는 상황에서 의료기관에서 복막투석을 확대할 동기나 인센티브가 없다. 이것을 어떻게 제도화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복막투석의 중요성을 말했다.

정 장관은 APCN 심포지엄 축사 영상을 통해 복막투석 환자의 재택 관리에서 한-대만 간 상호협력이 이뤄지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해 복막투석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확인했다.

만성 콩팥병 환자는 콩팥 기능을 대신할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진다. 1주일에 3번 병원을 찾아 4시간씩 누워 있어야 하는 혈액투석, 집에서 매일 스스로 관리하는 복막투석이다. 복막투석은 환자가 직장 생활이나 일상적인 사회 활동을 병행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복막투석을 관리할 수가(인센티브)가 부족하다 보니 시설을 갖춘 혈액투석 위주로 진료가 쏠린다. 결과적으로 환자들은 복막투석을 원해도 선택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

만성 콩팥병은 아시아 전역에서 급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증가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1년 기준 국내 만성 콩팥병 진료비는 2조4000억 원에 달한다. 말기 신부전으로 진행될 경우 환자 1인당 연간 치료비는 약 3000만 원까지 치솟는다. 이 지점에서 대만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만의 재택 투석 비율은 7.9%로 한국(4.5%)의 배에 달하며, 2035년까지 18%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대만은 제도적으로 조기 검진, 예방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재택 투석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가정 내 혈액투석까지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반면 한국은 가정용 혈액투석 기기를 개발하고도 제도 미비로 정작 국내에선 못 쓰고 수출만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국립 대만대병원에서 복막투석 현장을 둘러본 학회 관계자들은 “복막투석은 필수 의료의 지속 가능성과 재택의료 확대, 지방 의료 활성화라는 과제를 동시에 고민하게 하는 치료 방식”이라며 “환자가 병원에 매이지 않고 일상과 지역 안에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치료 선택권을 지키는 의료다. 직장과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 환자와 가족의 경제적 기반을 지키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최근 복막투석 재택 관리 시범사업을 3년 연장하기로 했다. 성과 기반 보상체계를 도입하고 교육 상담료를 확대하는 등 진일보한 변화도 감지된다. 재택 복막투석은 병원 혈액투석보다 환자당 연간 약 1000만 원의 진료비를 절감하는 효과가 증명됐다.

하지만 시범사업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무엇보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국가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만성 콩팥병 환자 관리가 필요하다. 즉, 개인의 투병 의지에만 맡길 게 아니라, 말기 신부전 환자 등록제와 투석기관 인증제 등이 포함된 ‘만성 콩팥병 관리법’ 제정을 통해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와 지원을 의무화해야 한다. 콩팥이 멈추기 전, 정책 시계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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