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핵추진 잠수함(핵잠)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핵잠은 단순히 전투에서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전쟁 자체를 억제하고 유사시 국가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안보 전략 자산이다. 오늘날 억제 전략은 핵무기의 파괴력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재래식 전력이라도 정밀성, 신속성, 지속성, 상시성을 갖춘다면 충분한 억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핵잠은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적에게 위치가 쉽게 노출되지 않는 은밀성과 적의 어떠한 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성에 더해, 공격 성공 가능성을 낮추는 거부적 억제력과 공격 이후 혹독한 대가를 인식시키는 보복적 억제력을 동시에 제공한다.
이런 전략적 가치를 고려하면 핵잠은 막대한 예산과 기회비용에도 불구하고 확보해야만 하는 전력이다. 다른 무기체계에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이 줄어들고 외교적 부담도 뒤따르겠지만, 이를 전략적 자율성을 높이고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선택지를 넓히는 비용으로 본다면 감수해야 할 투자다. 안보 전략자산은 단기적인 비용 계산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현 단계에서 핵잠 확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기술이나 예산이 아니다. 국제 비확산 체제와 한미동맹이라는 구조 속에서 동맹과의 인식 조율이 선행돼야 한다. 이 측면에서 보면 현재 한미 간 인식은 아직 동상이몽에 가깝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이 핵확산 우려를 키우지 않으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의 부담을 분담하고, 자국의 조선·방산 산업에도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반면 한국은 이를 통해 북한 억제력을 강화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넓히며 국내 조선·원자력 산업의 도약까지 이루기를 바란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우선순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동상이몽을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의 협력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같은 배를 탄 이상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함께 노를 저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을 제공하고 무엇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계산이 필요하다. 시장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생산자와 소비자가 거래에 나서는 이유는 그 거래가 양측 모두에게 이전보다 나은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핵잠 협력 역시 어느 한쪽의 완승이 아니라 상호 만족의 균형 구조에서만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 핵잠 확보를 핵 잠재력 확대와 연결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그런 인식이 확산되는 순간, 미국과 국제사회의 반발로 사업 자체가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핵잠은 비핵 무기이며 국제 핵 비확산 체제를 준수하는 범위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오해를 차단하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미국이 체감할 수 있는 전략적·산업적 이익을 제공하는 대신, 한국은 북한 억제력 강화와 전략적 자율성 확대, 조선·방산 산업 발전이라는 핵심 목표를 분명히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계산이, 구호가 아니라 설계가 필요하다. 외교·군사·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조화된 정책 노력이 요구된다.
대한민국에 핵잠은 필요하다. 기회비용이 크다는 이유로 주저할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전략적 효용이 크기에 더 정교하게 준비해야 할 과제다. 핵잠 확보의 첫 시험대는 동상이몽을 동주공제의 현실로 만들어내는 우리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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