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값을 따로 받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불편했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컵 따로 계산제’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컵 가격은 100∼200원이 될 전망이다. 시행 시기는 공청회 의견 수렴 후 결정한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제대로 시행도 못 해 보고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만큼 오락가락했던 정책도 드물 것이다. 코로나로 일회용 쓰레기가 급증하자 정부는 2020년 6월 일회용 컵 음료를 사면 보증금 300원을 낸 뒤 컵을 반환할 때 돌려받는 이 제도를 2년 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행 한 달을 남겨두고 준비 부족을 이유로 6개월 연기했다가, 6개월 후엔 세종과 제주에서만 우선 시행하기로 물러선 뒤, 2023년 11월 윤석열 정부가 소상공인 부담을 이유로 전국 확대 시행을 보류했다. 현재 시범 시행 중인 세종과 제주에선 74%까지 올랐던 컵 반환율이 55%로 떨어진 상태다.
▷이 제도가 표류한 이유는 부담은 크고 유인은 작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보증금 300원을 돌려받으려고 컵을 씻어 반납하는 걸 번거로워했다. 업주 입장에선 컵마다 반납 라벨 붙이고, 반납한 컵 보관했다 회수업체에 보내고, 보증금 내주는 게 불편하고 비용까지 드는 일이었다. 사실 이 제도는 2002년 처음 도입했다 2008년 폐지됐는데 그때도 ‘누가 보증금 50∼100원 받자고 귀찮게…’라는 저항이 컸다. 이미 실패했던 정책을 도입하면서 2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음에도 똑같은 이유로 실패한 셈이다.
▷역대 세 번째 일회용 컵 규제가 될 ‘따로 계산제’는 반납하는 불편함이 없다. 대신 소비자로선 가격 인상이 불만일 수 있다. 정부는 텀블러를 이용하면 일회용 컵값 100∼200원, 탄소중립포인트 300원, 매장 할인 500원 등 총 900∼1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와 함께 도입했다가 유야무야된 것이 플라스틱 빨대 매장 내 사용 금지다. 정부는 재질에 상관없이 빨대는 고객이 요청할 때만 제공하도록 규정을 고치기로 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일회용 컵 사용량은 102개다. 일회용 컵은 생산 단계부터 폐기까지 많은 자원을 쓰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종이컵 안쪽 코팅 성분은 뜨거운 음료가 닿으면 미세 플라스틱이 나와 인체에도 좋을 것이 없다. 유럽은 매장 내 사용은 물론이고 배달 시에도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추세다. 하지만 앞선 두 번의 실패에서 보듯 수용성 고려 없이 명분만으론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환경 정책이다. 일회용품 규제하자며 ‘일회용’ 대책만 내놓는 일은 그만 봤으면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