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경수]아직은 검찰에 희망이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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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과잉행보-尹 사퇴로 상처입은 檢
‘거악 척결’ 오만함 속에서 간과한
정치적 중립과 공정 가치 돌아봐야

김경수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김경수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정권 몰락의 생생한 모습은 감옥에서도 볼 수 있었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 정권 인사들이 하나둘 서울구치소의 독거실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해 수사의 전권을 맡겼다. 이른바 ‘적폐수사’는 문 대통령의 국정과제 제1호였고, 명찰은 ‘수사’지만 내용은 ‘정치’였다. 수사 대상은 국가정보원, 법원으로 계속 확대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에 이어 전 정권의 국정원장, 청와대 수석비서관, 장차관급 인사들이 줄줄이 구치소로 들어갔다. 서울구치소 독거실 부족의 기현상도 벌어졌다. 적폐수사의 상징이 된 윤석열은 이례적으로 2년 이상 중앙지검장으로 재직했고, 그동안 중앙지검의 수사 인력은 대폭 늘어났다. 이는 대통령의 집념의 표현이었다.

2019년 7월 대통령은 또 한번의 파격 인사로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분’, ‘우리 윤 총장님’이라면서. 그해 9월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에 조국 교수를 임명하면서 대통령과 검찰총장의 밀월관계는 끝났다. ‘검찰개혁의 적임자’ 조국과 ‘적폐수사의 상징’ 윤석열은 서로 상종할 수 없는 적으로 돌변했다. 서로가 상대의 본모습을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것이다.

2020년 1월 임명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행동은 기행에 가까웠다. 장관의 유일한 사명이 검찰총장을 몰아내는 데 있는 듯, 생뚱맞은 야간 기자회견부터 인사권, 징계권, 총장에 대한 지휘권 발동 등 장관에게 부여된 법률상의 다양한 권한을 골고루 행사했다. 검사들의 집단성명, 법원 결정으로 좌절을 맛보면서도 온몸을 던져 충성심을 보였다. 장관이 활용한 법률 조항은 법전에 씌어 있기는 하나, 법의 취지와 정신은 그것이 아니었다. 추 전 장관은 법전에 씌어 있는 글씨를 아전인수 격으로 읽고 해석했을 뿐, 법의 정신은 무시하고 훼손했다. 사실상 검찰을 폐지하는 내용의 중대범죄수사청 법안이 추진되자 잘 버텨오던 윤석열도 임기 4개월을 남겨두고 최근 사퇴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법률이 정한 2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한 14번째 검찰총장이 되었다.

대통령과 여권은 한때는 적폐수사의 성공을 위해, 한때는 말 안 듣는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헌법과 법률의 정신을 훼손했다. 대통령 자신이 선택하여 임명한 총장을 권위로 통제하지도, 인간적으로 설득하지도 못하는 무능함도 보였다. 급기야 꼭두각시 장관을 내세워 몰아내기에 급급했다. 적폐수사로 시작하여 총장을 내몰기까지 국론 분열은 극심했고, 소모적 논쟁은 먹고살기에도 바쁜 국민을 더욱 피곤하게 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과 여권은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검찰 스스로 지켜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력도 이를 존중해야 한다. 총장을 몰아내는 데 앞장선 장관과 몇몇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한철 맞아 날뛰는 메뚜기 떼를 연상케 했다.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업자의 모습이었다.

온탕과 냉탕을 거쳐 온 윤석열의 사실상 정치 입문이 화제다. 그가 권력의 고단위 압박을 견디며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것은 대단했다. 하지만 적폐수사부터 정치 입문까지의 과정을 볼 때 윤석열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그의 행보 또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상처를 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두 번의 파격 인사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자리를 제의했을 때 그는 다른 무엇보다 검찰 중립의 가치를 제일 귀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무사는 얼어 죽어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고 한다. 검사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이다. 올곧은 길을 가겠다는 각오이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말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도 희생 없이는 지킬 수 없다.

일련의 과정에서 검찰도 조직 역량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입법으로 기능과 권한이 축소되고, 무원칙한 인사로 인재들이 검찰을 떠났다. 극심한 편 가르기는 조직의 화합과 신뢰를 깨뜨렸고, 개개인의 마음에도 상처를 남겼다. 어쩌다 검찰이 이 지경이 되었나? 과거 오만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검찰에 힘이 생기면서 권력과 타협했고, 국민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거악(巨惡)을 척결한다는 크나큰 자부심의 그늘에서 정치적 중립과 공정에 대한 불신이 자라고 있음을 간과했다. 오만한 검찰권 행사가 결국 검찰을 찔렀다. 그러나 검찰에는 아직도 인재들이 남아있고,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단과 방법이 남아있다. 검찰에 희망은 있다.

김경수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검찰#희망#정권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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