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대지진 교훈 살리지 못하는 日[특파원칼럼/박형준]

박형준 도쿄 특파원 입력 2021-03-09 03:00수정 2021-03-0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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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시나리오 대비한 간 전 총리
현 정부는 최악 고민보다 경제 우선
박형준 도쿄 특파원
요즘 일본 신문과 방송을 접하면 마치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2011년 3월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10주년을 맞아 일본 언론들은 온통 관련 기획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취재 기억이 떠올랐다.

기자는 대지진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인 2011년 3월 12일 일본으로 급파됐다. 지진해일(쓰나미) 피해 지역과 가장 가까운 후쿠시마 공항으로 날아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도쿄지사 특파원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수소가스 폭발이 일어났다. 한시라도 빨리 후쿠시마를 탈출하라.”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피해만 해도 역대급이었는데, 거기에 원전 사고까지 겹치면서 전례 없는 대재앙이 됐다. 베이스캠프로 삼은 후쿠시마 북쪽 센다이는 전기가 끊겨 밤이면 암흑으로 바뀌었다. 수시로 여진이 몰려와 호텔에서 자다가 급히 밖으로 대피해야 했다. 대지진으로 도로 곳곳이 끊어지면서 대중교통이 멈췄다.

택시를 하루 전세 내고 들른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쓰나미가 휩쓸어 마을은 형체조차 없이 사라졌다.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무너진 가옥 잔해를 뒤지는 주민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행방불명자까지 합해 1759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인구가 2만3221명이었으니, 13명 중 한 명꼴로 희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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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 속에서도 일본인들은 차분했다. 음식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물류 공급이 더뎌 편의점은 부정기적으로 문을 열었다. 편의점이 문을 열면 100m 이상 긴 줄이 만들어졌다. 자기 차례가 되면 대부분 1인분만 구매했다. 굶고 있는 다수의 다음 사람을 위해서.

기자는 몇 시간씩 줄을 설 형편이 안 돼 이틀 동안 굶었다. 3월 14일 미야기현 나토리의 피해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자원봉사자들이 자기 차를 끌고 와 즉석에서 요리해 피해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덕분에 기자도 식사를 했다. ‘돈지리’(돼지고기가 들어간 국)라는 음식을 그때 처음 받아 들었고, 지금도 그 단어를 들으면 각별한 느낌이 든다.

당시 “피난소 바로 옆 관공서에 비축 물량이 쌓여 있는데도 담당 공무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이재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일본 기사를 보며 씁쓸해했던 기억이 난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일본은 세세한 부분까지 매뉴얼을 만들어 놓는다. 평상시에는 일본 사회를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지만 비상 상황에서 톱니 하나가 빠지면 전체가 돌아가지 않는다.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는 3월 16일 회의에서 “먹을 것과 물, 연료가 부족하다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자위대가 나서라. 물품 배급을 자위대로 통일하라. 총력을 기울이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런 간 전 총리를 5일 인터뷰했다. 10년 전 대응에서 얻은 교훈을 물었더니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가정해 대책을 세우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철수해 대피하려 한다는 보고가 왔다. 원자로가 멜트다운(노심용융)되면 250km 떨어져 있는 도쿄에까지 방사성물질이 누출될 수 있다. 도쿄전력에 반드시 현장을 지키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새로운 재앙과 싸우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방역을 외치면서도 국내 여행에 보조금을 주고, 음식점 식사 비용을 보조해 주는 정책을 펼쳤다. 최악을 대비하기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다 보니 감염자 수 감소가 더디다. 10년 전 귀중한 교훈도 사장(死藏)되고 있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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