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웬디 셔먼의 눈물과 美 핵협상 순위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1-03-15 03:00수정 2021-03-1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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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협상에 쏟은 美 눈물과 노력
對中전선 확대 흐름까지 읽고 대응해야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미국 국무부 2인자인 웬디 셔먼 부장관이 2018년 내놓은 회고록의 첫 장은 막판으로 치닫고 있던 이란과의 핵 협상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스트리아 빈의 한 호텔에서 예상보다 길어진 마라톤 회의 25일째. 누적된 피로감이 극에 달하던 시점에 이란 측이 또다시 어깃장을 놓으며 협상판을 흔들려 하자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셔먼 당시 국무부 정무차관은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백발마녀’라고 불릴 정도로 냉정하고 독하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협상장에서 눈물을 보였다니. 지금 생각해도 꽤나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셔먼 부장관은 협상 타결에 대한 절박함과 간절함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 사례로 이 순간을 꼽는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이란 측 협상팀이 긴 침묵 끝에 기존의 요구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이런 핵 협상의 뒷이야기들은 셔먼 부장관이 이란과의 핵 협상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그가 가장 먼저 매달리게 될 외교정책 최우선 순위에 이란이 놓여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회고록에는 현재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을 이끄는 주요 인사들의 이름도 줄줄이 등장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 존 케리 백악관 기후특사 등이 모두 들어 있다. 한층 어려워진 이란과의 재협상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각오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북핵 협상이 이란에 밀려 정책 후순위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워싱턴이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에 대한 관심 자체는 떨어져 있는 분위기다. 국내적으로는 경기 침체와 팬데믹 대응이 시급한 과제이고 대외적으로는 이란 외에 중국 문제가 핵심 현안으로 걸려 있다. 북한의 경우 김정은 정권이 도발하지만 않는다면 당분간 현 상태를 관리하는 수준에서 미국 대응이 유지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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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협상을 전담했던 국무부 내 대북정책특별대표실은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국무부의 한 당국자는 “너무 많은 특별대표실이 만들어져 옥상옥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계속 나왔다”며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실제 협상이 본격화하는 타이밍에 임명해도 늦은 건 아니지 않으냐”는 말로 부정적인 내부 기류를 전했다. 일각에서는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맡고 있는 성 김 주인도네시아 미국 대사가 ‘대행’을 떼고 정식 임명된 뒤 대북정책특별대표를 겸직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실무 당국자가 겸임하는 형식이 되면 협상의 집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의 관심을 붙잡아 북핵 협상의 동력을 불어넣으려는 정부의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외교 우선순위와 접근 방식은 우리가 원하는 타이밍에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북한이 언제 다시 협상장에 복귀할지도 변수로 남아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정책의 핵심으로 중국에 맞서기 위한 ‘쿼드(Quad)’ 구축 작업에 분주하다.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라는 말을 수백 번 되풀이하며 대중전선 확대에 애를 쓰고 있다. 이런 흐름을 읽고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받쳐줄 외교적 기반 다지기라는 점에서 또 다른 대북정책이 될 수 있다. 협상을 타결하고자 하는 셔먼 부장관의 눈물 어린 염원이 이란이 아닌 북한을 향하게 되는 것도 이때일 것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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